[기고] 아내에게 처음 써본 편지
[기고] 아내에게 처음 써본 편지
  • 김학록 수필가 / 경기 남양주시
  • 승인 2020.12.04 14:17
  • 호수 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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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록 수필가 / 경기 남양주시

내일은 모처럼 휴일이기에 세상 모든 것을 잊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수면을 취하려 했지만 어김없이 새벽 5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펜을 들고 당신에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58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나 약혼식을 하고 기념으로 손수건을 주고받던 기억이 납니다. 초라한 약혼이었지만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 하나만을 믿고 꽃다운 청춘을 내게 맡기고 의지한 당신. 이 세상 다하는 그날까지 아끼고 사랑하기로 마음 먹고 지금도 그렇게 하려 노력합니다.
80이 넘어서 조금 늦게 당신에게 쓰는 첫 편지.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표현이 조금 서툴렀습니다. 지금은 100세시대라고 하지만 온갖 병마에 시달리는 당신과 나는 얼마나 더 손을 마주잡고 거닐 수 있을까요. 이러한 걱정일랑 제쳐두고 나는 늘 당신의 든든한 쉼터가 되겠소. 당신이 힘들고 괴로울 때 내게 기댈 수 있도록 당신의 그늘이 되겠소. 
길거리에서 사다준 군밤 한 봉지에 기뻐하며 행복해 하는 당신. 많은 것을 소유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려준 당신. 언젠가 당신이 말했지요. 자녀들이 준 용돈을 쓸 때는 부담스럽지만 남편이 준 돈을 쓸 때는 당신 지갑에서 꺼내 쓴 것처럼 편안하다고. 
우리는 외롭고 힘들었던 청춘의 시절을 서로 의지하며 건너왔습니다. 황혼 길을 거니는 지금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당신에게서 어미 새의 깃털처럼 따뜻한 온기와 체취를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황혼의 마루턱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당신만을 위해 살겠소.
부부는 믿음과 사랑이 따르지 않으면 헛된 구호일 뿐입니다. 사랑에는 지위고하나 귀천이 따로 없습니다. 또 물질의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부부인 사람들보다 3배나 많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도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잘 모시면 효자가 되고 부부가 배우자를 잘 돌보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말을 늘 되새기겠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늙어가는 것도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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