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약 권하는 사회 / 김광일
[백세시대 / 금요칼럼] 약 권하는 사회 / 김광일
  •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장
  • 승인 2020.12.04 14:20
  • 호수 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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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장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장

약물로 인한 불편한 증상 없애려

또 다른 약 추가하는 악순환

복용하는 약 많아지면 

약효가 떨어지거나 과도해질 위험

꼭 필요한 약만 제대로 복용해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심이 후한 사회이다. 맛난 것이 있으면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좋은 것이 있으면 사용해보라고 열심히 권한다. 그래서인지 TV에서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 혹은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건강보조제 광고를 보고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는 분들이 있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건강기능식품을 구입해서 친지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다른 이유로 약 처방이 많아진다. 진료 도중에 “잠을 푹 자기 힘들다”고 호소하면 담당 의사는 “네, 필요한 약 처방 드릴게요”라고 바로 응답한다. 간혹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면 습관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도 있지만, 진료실에서 잠을 자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수면제 처방을 원하는 경우이다. 의사가 한참을 설명하고 난 후 수면제를 처방하지 않으면 매우 서운하게 생각하는 환자분들도 드물지 않다. 아마도 불편한데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와 같이 어르신들이 불편해하는 증상이 있을 때마다 처방 약이 추가되다 보니, 여러 질환과 불편한 증상을 가진 어르신들은 복용하는 약들이 늘어나면서 하루에 10알 이상의 약을 먹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실제 우리나라 노인들은 약을 얼마나 복용하고 있을까? 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7년 시행한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노인 중 3개월 이상 약(의사 처방약+비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는 비율은 85.1%이었다. 1∼2개의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23.5%, 3∼4개 복용하는 경우가 22.8%, 그리고 5개 이상 복용하는 경우도 38.9%이다. 노인이 복용하는 약의 평균 개수는 4.1개이다. 5개 이상의 약을 복용하게 되면 약과 관련된 문제가 많이 발생하여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약제복용’이라고 정의하고 관리하는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경우가 다약제복용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을 포함하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2014년 보험 청구 자료를 이용하여 31만9185명의 65세 이상 노인의 약물 처방자료를 분석한 결과 86.4%의 노인분들이 5개 이상의 약을 처방받았고, 그중 44.9%는 10개 이상의 약을 처방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여러 만성질환을 앓게 되면서 젊었을 때보다 복용하는 약이 많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약을 많이 먹는 것이 문제가 될까? 

우선 복용하는 약이 많아지면 복용하는 약 간에 약물상호작용이 발생하여 약의 효과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즉, 약효가 너무 강해져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약효가 떨어져서 효과가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한 명의 의사가 처방할 때는 약물상호작용을 고려해서 처방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성은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노인들의 경우 여러 병원, 여러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기 때문에 환자가 복용하는 약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않고 새로운 처방을 내릴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할 위험성이 증가된다.

두 번째로는 노인 환자분들의 불편한 증상 중에는 약물 이상 반응에 의한 것이 드물지 않은데, 단지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새로운 약을 추가하게 되면 악순환이 반복되어 복용하는 약의 개수는 계속 늘어나게 되고, 불편한 증상은 해결되지 않거나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치매 치료제로 사용되는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 계열의 약은 소화가 잘 안 되는 소화기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라고 하는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하게 되면 마른기침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약물 부작용을 의심하지 않고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약을 추가하게 되면 불필요한 약을 추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 추가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문제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복용하는 약의 개수가 많아지면 복용방법과 시간을 잘 지켜 약을 제대로 복용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즉, 약의 개수가 많다 보니 약을 먹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기도 하고, 간혹 아침에 복용한 약을 오후에 다시 중복해서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 약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약의 효과가 떨어지거나 과도하게 나타나서 문제가 발생할 위험성이 증가한다. 

노인에게는 가능하면 복용하는 약의 개수를 최소로 하고 복용방법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어르신들도 모든 불편한 증상을 약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알아보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약을 먹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한 노년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약을 제대로 잘 복용하고, 불편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약은 적절하게 사용하여 약으로 인한 문제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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