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만원으로 세식구가 한달 버텨요”
“37만원으로 세식구가 한달 버텨요”
  • 관리자
  • 승인 2008.12.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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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국민운동본부, ‘조손가정 어린이·독거노인 돕기 캠페인

본지와 사단법인 ‘어린이유괴성범죄추방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조손가정 어린이와 독거노인을 돕기 위해 ‘아름다운 동행-노년 나눔 캠페인’을 마련했다. ‘아름다운 동행-노년 나눔 캠페인’은 이달부터 내년 1월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후원금은 국민운동본부에서 접수해 보건복지가족부의 관리감독 아래 전국 자치단체에서 추천 받은 조손가정 어린이와 독거노인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서울 신월동 박석심 어르신, 손자녀와 힘겨운 나날 보내


서울 양천구 신월1동. 다가구주택이 빼곡한 골목길을 돌고 돌아 준이(9·가명)와 순이(8·가명)가 살고 있는 5평짜리 반지하 주택을 간신히 찾았다.

 

집안에 들어서자 소염진통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준이와 순이를 맡아 키우고 있는 할머니, 박석심(72·여) 어르신은 최근 심한 요통으로 방안에 갇혀 지낸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에, 병원은 참으로 멀기만 하다. 준이와 순이네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 소염진통제를 대주고 있어 병원을 대신하고 있다.


“병원 갈 돈이면 애기들 고기라도 사주는 게 낫지….”


전남 진도군에서 살던 할머니는 2002년 7월 서울에 올라왔다. 그 즈음 이혼한 둘째 아들(41)이 아이들을 맡겼다. ‘잠시’라던 아들의 부탁은 6년이나 됐다.


“처음에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늙은이 난생 처음 서울살이에 뭘 하겠어요. 하루 1만원 벌어 끼니 때우고, 어느 날은 한 푼도 못 벌어 굶고…. 끔찍했지요. 그때 비하면 지금은 왕부자가 됐어요.”


그나마 준이와 순이가 구김살 없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커줘 다행이다. 지금까지 치과를 빼고는 병원에 가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준이와 순이네 월수입은 37만1000원. 아이들 양육보조비로 나오는 정부지원금 28만7000원과 할머니가 받는 기초노령연금 8만4000원이 전부다. 큰 아들(46)과 아이들 아빠인 둘째 아들, 그리고 50대 초반의 두 딸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도 제외됐다. 하지만 자식들도 빠듯한 살림에 준이와 순이까지 챙겨주진 못하고 있다.


매달 20만원씩 월세를 내고, 수도세와 전기세 등 공과금을 빼면 천 원짜리 몇 장 남는다. 월세를 못낸 적이 많아 보증금 800만원도 모두 소진됐다. 인천 어딘가 있다는 아이들 아빠는 소식조차 뜸하다. 2006년부터 할머니가 폐지를 모아 반찬값이라도 벌었다.

 

하지만 지난 5월, 할머니는 선천성 기형이던 왼쪽 발가락 수술 이후 꼼짝없이 방안에 갇히고 말았다. 진도에서 밭일을 할 때는 괜찮던 발가락이 하루 종일 폐지를 찾아 전전하는 딱딱한 아스팔트길은 이겨내지 못했다. 발가락 수술의 영향인지 11월 말부터 허리까지 아파 집안 일만 겨우 감당하고 있다.


“그래도 계집애라고, 순이가 설거지를 참 잘해요. 할머니가 아프다고 여덟 살짜리가 설거지하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나요. 내가 빨리 나아야 할 텐데….”  


할머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썩 잘하는 준이와 순이가 대견하다. 울먹이던 할머니는 다닥다닥 벽에 걸린 상장을 자랑하며 금세 함박웃음을 짓는다. 얼마 전까지 과학자가 꿈인 손자에게 컴퓨터 한 대 장만해 주지 못하는 처지가 한스럽기만 했다. 다행히 인근 복지관에서 최근 컴퓨터 한 대를 들여놓고 갔다.


“우리 준이는 세상에서 공부를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되겠데요. 순이는 아나운서가 돼서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데요. 그런데 이렇게 늙은 몸뚱이론 아이들을 맘껏 가르칠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고 한스러울 따름이지요….”   


그나마 십시일반 도움을 주는 주민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인근 교회에서는 매주 반찬을 대 주고 있다. 준이가 다니는 보습학원은 한 달 수강료 20만원을 받지 않고 있다. 여자아이답지 않게 씩씩한 순이를 맡은 합기도장에서는 교습비를 2만원 깎아줬다. 어떻게 알았는지 먹을거리를 사다 놓고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총총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살았을지…. 아이들은 하루하루 몰라보게 커 가는데 내 몸은 자꾸만 늙어가니….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네요.”  


준이와 순이가 사는 동네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폐신문을 재활용으로 수거하지 않고 문 앞에 내놓는 것. 준이와 순이는 편찮으신 할머니를 대신해 틈틈이 신문지를 모아온다. 그러면서도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는 아이들이다.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전거요!”라며 입을 모은다. 준이와 순이가 행복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는 날이 언제쯤일까.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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