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 원장의 만성 소화기질환] 28. 세종을 괴롭힌 설사의 정체와 한의학 치료법
[김영근 원장의 만성 소화기질환] 28. 세종을 괴롭힌 설사의 정체와 한의학 치료법
  • 김영근 원장
  • 승인 2021.01.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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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질환은 만성으로 되기 쉽다. 김영근 위맑음한의원장이 위장 등 소화기질환 극복법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성군(聖君) 세종대왕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재위 기간에 옥체 곳곳에서 이상을 감지했다. 청년 때는 두통과 이질, 다리 통증으로 힘들어 했고, 중년부터는 지병을 달고 살았다. 등의 종기, 당뇨, 관절염, 수전증, 안질환이 대표적이다.

​어의들은 성심을 다해 치료했으나 한 가지 질환이 개선되면 다른 질환이 이어졌다. 이는 근본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탓으로 보인다. 업무 스트레스와 일중독은 필연적으로 만성피로와 면역력 저하를 부른다. 세종은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진 탓으로 자가진단 했다. 왕은 43세 때인 1439년 6월 21일 건강 상실의 도미노를 말한다.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衰老)함이 심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세종의 질환 기록은 50여 건이다. 이중에 설사도 몇 차례 등장한다. 계속되는 물 설사는 임금이 심혈을 기울인 외교 행위를 어렵게 했다. 세종은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는 대부분 직접 주관했다. 신생국 조선의 국방 안정과 문물 융성을 위해 명나라와의 우호 관계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세종은 즉위 15년(1433) 11월 1일 중국 사신과의 만남을 포기한다. 대신 연회를 세자에게 주관하게 한다.

“내가 설사를 앓고 있는데, 이틀 뒤에 풍기(風氣)가 생겼다. 바람기는 나았으나 설사는 회복되지 않았다. 임무를 세자에게 맡긴다.”

세종은 1년 전인 1432년 11월 29일에도 설사로 인해 명나라 사신 전송을 하지 못했다. 임금은 전별연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찬바람에 설사가 재발될 것을 우려해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11월은 음력이다. 양력으로는 12월과 1월에 해당하는 추운 겨울이다. 찬 기운은 오장(五臟)에 악영향을 미쳐 배앓이, 소화불량,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육부(六腑)에 침입하면 열이 나고 숨이 찬다. 세종의 설사 색깔은 찬 날씨 속에 지속된 것을 감안하면 옅은 노란색이나 희고 푸른색 계통일 수 있다.

또 설사가 풍기와 함께 진행된 점을 고려하면 열 기운과 밀접한 붉거나 노란 검은색 가능성도 있다. 세종의 설사는 이질로 악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방에서는 잦은 설사를 구설(久泄)로 쓴다. 구설은 원기와 진음(眞陰) 부족이 큰 원인이다. 장기간 피로 누적에 원기와 진음이 부족하면 설사에 취약하다. 설사가 오래되면 몸이 허약해져 이질로 악화될 수 있다.

​이질은 물 설사가 보통 일주일 이상 지속되는데 발열, 복통이 함께 한다. 세종이 외부활동을 하지 않은 상황은 물 설사를 의심하게 한다. 조선 태조 때 발간된 향약제생집성방에서는 설사이질(泄瀉痢)을 다음처럼 설명했다.

​“물 같은 설사는 찬 기운과 뜨거운 기운이 조화되지 못하여 기(氣) 흐름 방해, 비위(脾胃) 약화, 습(濕) 가래 정체로 생긴다. 장(腸)이 물의 기운을 통제하지 못해서 결국 물 같은 변을 쏟게 된다.”

장 기능이 저하되고 풍사가 침입된 만성설사는 한방 치료가 효과적이다. 장의 습 조절력을 키우고, 약해진 비위를 강하게 하고, 폐의 기운을 높이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처방이다. 장부 중 수분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은 폐(肺,) 비(脾,) 소장, 신장(腎臟)이 있다. 따라서 이 기관들의 기능을 모두 향상시켜 균형을 이루게 해야 완전한 치료가 된다.

옛 의서에서는 처방약으로 수유탕(茱萸湯), 신선구기탕(神仙九氣湯), 호마산(胡麻散), 대성산(大聖散), 오향연교탕(五香連翹湯), 백복령, 삼백탕, 삼출건비탕, 향시환(香豉丸 등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약재도 인삼, 백출, 더덕, 천마, 흰깨, 활석, 석고, 지실, 복령, 저령, 택사, 반하, 황련, 부자 등 여러 가지다. 처방은 증상과 체질에 따라 다르다.

세종대왕이 일정을 취소할 정도로 속앓이를 한 설사, 특히 겨울철 설사는 현대 한의학으로 어렵지 않게 치료된다. 다만 어떤 약을 쓰든 인체 전반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처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잔뜩 불안한 시절에는 설사를 빨리 멈추게 하고, 면역력을 극대화하는 한방 요법이 건강생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글쓴이> 김영근

태원의학회 수석교수로 위맑음한의원장이다. 20년 넘는 기간 동안 만성 소화기질환 연구와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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