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법은 과연 공정한가”
[백세시대 / 세상읽기] “법은 과연 공정한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2.05 13:47
  • 호수 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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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과연 공정한가. 기자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두 가지 사례가 그걸 뒷받침한다. 하나는 법정에 선 한 택배기사의 억울한 사연이고 다른 하나는 전 국민을 화나게 만든 조두순 복지급여 수령 건이다. 

택배기사 하씨는 검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소됐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문한 상품을 배송한 택배기사로 2020년 8월 피해자가 운영하는 미용실의 시정(施錠·자물쇠를 채워 문을 잠금)되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 침입했다.”

잠겨 있지 않은 미용실 뒷문으로 들어가 택배상자를 두고 온 택배기사의 행위는 과연 범죄일까. 하씨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미용실에 배송을 갔다. 신축건물 1층에 미용실이 있었다. 미용실 문 앞에 택배상자를 두려면 현관 출입문을 통과해야 했다. 현관 출입문은 도어록으로 잠겨 있었고 고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외부 주차장으로 통하는 미용실 뒷문이 보였다. 뒷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하씨는 뒷문을 열고 네 다섯 걸음을 걸어 들어가 미용실 안에 물건을 두고 나왔다.

하씨가 다른 배송지로 이동 중에 미용실 주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주인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미용실 앞문 앞에 두고 가라”고 했다. 이때 다른 사람 같았으면 “뒷문을 통해 들어가 물건을 두고 나왔다”고 했을 텐데 하씨는 그러지를 않았다. 

그는 미용실 주인과의 통화를 끝내고 신축 건물로 되돌아가 뒷문을 통해 물건을 가지고 나온 후 현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미용실 문 앞에 물건을 두고 왔다.  

몇 시간 뒤 하씨는 건조물 침입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주인이 하씨를 신고했기 때문이다. 하씨는 경찰조사에서 “새로 연 가게에 발자국이 찍혀서 매우 기분이 나빴다”는 말을 피해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하씨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합의를 요구했지만 주인은 들어주지 않았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후 피해자는 합의금 300만원을 요구했다. 하씨는 합의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벌금 20만원의 약식명령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벌금 50만원 약식명령을 청구했던 검사가 “벌금이 너무 적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하씨가 이날 피고인석에 서게 된 이유다. 

하씨는 “피해자에게 죄송하다. 이 사건 전에 택배 물건을 여러 번 분실해 물어준 적이 있어 최대한 안전하게 해야겠다는 강박감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는 최근 생활보장위원회를 열고 조두순 부부에 대한 기초생활보장수급 자격을 심사해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이들 부부는 기초연금 30만원, 생계급여 62만6424원, 주거급여 26만8000원 등 총 120여만원을 매달 월급처럼 받는다. 안산시는 조두순이 기초연금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주거급여법을 충족하기 때문에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조두순은 무직자이며 부인은 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들은 보증금 500만원에 30만원짜리 월세에 산다. 자식도 없다.

조두순은 8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상해한 죄로 12년형을 복역하고 지난해 12월 출소해 안산시에 살고 있다. 조두순이 복지급여를 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내 피 같은 세금으로 흉악범을 먹여 살리는 건 말도 안 된다’ ‘법 개정을 해서라도 주지 말아야 한다’ ‘120만원을 다 줘야 하는가’ 등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2월 3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 있는 ‘조두순에게 기초생활수급 지원금 주지 마세요’ 제하의 청원 글에 9만5000여명이 동의했다.

위의 두 사례에서 보듯 법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고통을 주려하고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에게 황당하기 짝이 없는 ‘특혜’마저 주려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이 실제 삶 속에선 얼마나 합리적이지 못하고 얼마나 공정하지 못하며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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