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끊이지 않는 유명인들의 학폭 문제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끊이지 않는 유명인들의 학폭 문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2.19 14:12
  • 호수 7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방송 초반 학교폭력(학폭) 문제를 소재로 삼았다. 주인공 ‘소문’과 친구들은 수년간 학폭에 시달렸고 소문에게 초능력이 생기고 나서야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웃긴 건 이후 전개과정이다. 소문을 때리려다 되레 얻어맞은 학폭 가해자 부모들은 의사, 변호사 등 소위 잘나가는 직군에 몸담고 있고, 소문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조부모와 살고 있었다. 학폭 가해자 부모들은 학교로 찾아와 소문이 자신의 자식들을 폭행했다며 처벌을 요구했다. 선생님 역시 소문이를 다그치며 학폭 가해자 편에 섰다. 

어이없는 건 이 문제 역시 ‘초능력’으로 해결한 점이다. 단, 이 초능력은 신체적 능력이 아닌 ‘조’단위 돈을 가진 막대한 재력이었다. 소문의 후원자인 재벌기업 회장이 나서서 이 문제를 깔끔히 정리한 것이다. 

드라마적 설정이긴 하지만 이를 보면서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을 죽도록 괴롭힌 학폭을 뿌리뽑은 건 학교 교칙도, 범죄자를 소탕하는 경찰도, 수십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구축한 사법체계도 아니었다. 주인공들은 더 큰 ‘힘’과 더 많은 ‘돈’으로 학폭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은 학폭을 당해도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준 꼴이다. 

실제로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학폭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 사과도 받지 못하고 상처를 입은 채 성인이 된다. 물리적 상처야 아물겠지만, 마음에 새겨진 고통스러운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

최근 한국 프로배구가 유명 스타들이 청소년 시절 저지른 학폭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국가대표를 지낸 쌍둥이 자매의 학폭 사건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선사했다. 소속팀과 대한배구협회는 여론의 눈치를 보다 각각 ‘무기한’ 출전 정지와 국가대표 박탈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영구제명과 달리 당장 내일이라도 복귀가 가능한 ‘무기한’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여론 회피용  징계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가해 당사자, 소속팀, 배구협회의 진짜 문제는 피해자의 상처를 전혀 어루만지지 않는데 있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속 가해자와 그들의 부모들처럼 여론이라는 엄청난 힘에 굴복해 반성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무엇보다도 공정함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학폭 가해자의 몰락이 학폭 문제의 공정한 해결은 아니다. 피해자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동반돼야 한다. 무엇보다 애초부터 학폭이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