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서울시장 선거 “재탕”
[백세시대 / 세상읽기] 서울시장 선거 “재탕”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2.19 14:26
  • 호수 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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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법정 구속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나 있음직한 일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똑같이 벌어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과 손발을 맞춰 2017~2019년 박근혜 정부 당시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3명에게 사표를 종용하고 청와대와 환경부가 점찍은 내정자가 임명되도록 채용 과정에 부당 개입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촛불정신으로 잉태돼 적폐청산을 지상 최대목표로 설정한 문재인 정부도 박근혜 정부의 문화·방송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답습한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서울시장 선거가 대표적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주·조연급들이 2021년 이 시점에도 등장해 열연 중이다. 여야의 유력후보 더불어 민주당 박영선·우상호, 국민의힘 나경원·오세훈, 국민의당 안철수…이들 모두가 10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봤던 구시대 유물적 인물들이다. 

당시 무소속의 안철수는 무소속의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당시 여당에선 나경원이, 야당에선 박영선이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가 됐다. 이때 야당 당내 경선에 출마했던 사람 중 하나가 추미애다. 만약 추미애가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대결에서 이겼더라면 이번에도 얼굴을 내밀었을 것이 틀림없다. 박원순은 박영선과 야권 후보 단일화에서 이기고 다시 본선에서 나경원에게 승리해 서울시장이 됐다. 

인물만 재탕이 아니다. 이들이 내건 공약들을 보면 10년 전과 판박이다. 여전히 개발과 토건, 부동산 일색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수십만호의 주택 공급을 제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개발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누가 더 많은 주택을 건설하느냐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후보들이 5년 내 공급하겠다는 주택을 단순 계산하면 300만 채에 육박한다. 그걸 실현하느라 얼마나 많은 건물과 땅을 허물고 파고 짓고, 그 과정에서 국민은 또 얼마나 많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마셔야 하나.

대통령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를 하지만 한국은 유독 과거 인물들이 재수, 삼수를 해 기어코 대통령을 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김영삼은 3수, 김대중은 4수, 문재인은 재수로 대통령이 됐다. 이회창은 세 번 출마했고 당내 경선까지 포함하면 박근혜도 두 번 출마했다. 미국에선 대통령 출마를 평생 한 번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낙선을 자신에 대한 국민의 최종 평가로 받아들인다.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국민 전체 투표에선 이겨놓고도 주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 패한 힐러리 클린턴은 재수를 하지 않았다. 앨 고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도 조지 W 부시에게 억울하게 패했지만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 어떤가. 이들은 대선에서 떨어지면 5년 뒤 재수를 당연시 여긴다. 국민도 그걸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 이 같은 한국정치 문화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다. 정치는 인물, 세대교체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 분야이다. 정치인은 카카오나 쿠팡의 오너 같은 기발한 사업가가 아니다. 평균적 지식과 학식, 양식을 가진 보통사람 중에 남다른 애국·애민 정신을 지닌 리더십이 있는 이여야 한다. 정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젊은 층이 활발히 참여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기회를 얻었던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은 다시 도전하지 않는 참신한 선거풍토가 정착 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에선 소수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회를 독점한다.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바로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다. 정치 재수·삼수를 하다보면 주변에 신세 지는 이들과 내 편이 꼬이기 마련이다. 당선 후에는 이들에게 보답을 해야 해 공공기관장 자리에 낙하산 인사가 만연해진다. 환경부가 청와대 내정자를 정함으로써 내정자를 제외한 지원자 130명은 내막도 모른 채 서류심사와 면접을 보고 가슴 졸이며 합격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우리나라 정치는 사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삼류, 기업은 이류”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다시 한 번 이 회장이 간파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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