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미 시골마을로 이사 간 한국인 이민 1세대의 애환
영화 ‘미나리’, 미 시골마을로 이사 간 한국인 이민 1세대의 애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2.26 14:46
  • 호수 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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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1970~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떠난 한인 이민 1세대의 애환을 잔잔하게 그리며 아카데미상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이번 작품은 1970~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떠난 한인 이민 1세대의 애환을 잔잔하게 그리며 아카데미상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1980년대 미 아칸소로 이주해 농장 일군 제이콥 부부의 삶과 도전 

정이삭 감독 자전적 이야기… 골든글로브상, 오스카상 수상도 기대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코로나19 여파로 다소 흔들리긴 했지만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기회의 땅 미국으로 향했고 ‘아메리칸 드림’에 도전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배우자로 수많은 여성이 북미로 떠났고 1965년 미국이 이민법을 개정해 민족별 쿼터제를 폐지하면서 1970년대에는 매년 3만명의 한인이 미국땅을 밟았다. 이 시기 미국에 온 한국인 이민 1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개봉한다. 전세계 영화제를 휩쓸며 주목받고 있는 영화 ‘미나리’ 이야기다

3월 3일 공개되는 영화 ‘미나리’는 낯선 미국 땅으로 와 두 아이를 낳고 살던 한국인 이민자 제이콥(스티브 연 분)이 아내 모니카(한예리 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칸소라는 시골마을로 이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작품은 모니카가 남편의 이삿짐 트럭을 따라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두리번거리며 운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제이콥이 이곳에서 농장 경영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내린 결정을 모니카는 못마땅해 했다. 그리고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벌판에 덜렁 놓인 바퀴 달린 컨테이너형 집을 본 모니카는 말문마저 막힌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막내아들 데이빗의 건강을 제대로 챙길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콥은 농장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모니카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병아리 감별 공장에 일을 나간다. 두 아이 앤과 데이빗을 돌봐줄 이가 필요했던 부부는 고민 끝에 한국에서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윤여정 분)를 초청한다. 순자는 가방 가득 멸치‧고춧가루‧한약‧미나리씨 등을 싸들고 오고 모니카는 이런 모성애에 눈시울을 붉힌다. 헌데 정작 데이빗은 낯선 할머니의 등장이 반갑지 않다. 할머니에게서 나는 ‘한국 냄새’와 그녀가 내민 보약과 ‘염병’ 같은 한국식 욕이 낯설고 어색하다. 결국 데이빗은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며 쉴새없이 투덜대지만, 자신을 하염없이 보듬어주는 순자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제이콥은 한국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한다. 경험도 없이 무작정 우물을 파고, 밭을 갈고 작물을 심는다. 매년 수만 명씩 미국으로 이민 오는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 작물을 팔겠다는 그의 계획과 달리 농사도, 판매도 쉽지 않다. 모니카는 늘어가는 빚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면서 병아리 감별사 일에 매진한다. 주말에는 근처 교회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만 더욱 뼈저리게 느낀 채 돌아온 후에는 일요일에도 일을 한다.

결국 아칸소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다시 캘리포니아로 가려는 결심을 하게 된 모니카는 남아서 뭔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제이콥과 갈등한다. 설상가상 순자가 시름시름 앓게 되면서 부부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이번 작품은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한 것으로 1970~80년대 미국 사회에 정착하려는 한국인 이민 가족의 애환을 담담하게 전개한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인물들을 보편적이고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 했고, 담담하게 그려내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와 감정, 그리고 극의 긴장감은 음악으로 풀어낸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미나리는 극중 가족의 사랑을 상징한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미나리 이즈 원더풀!”이란 순자의 대사처럼 미나리는 아무곳에서나 뿌리를 내리면 혼자서도 잘 자란다. 이렇게 성장한 미나리는 땅과 물을 정화해준다. 광복 이후 수많은 한국인들이 기회를 얻기위해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 대다수는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미나리처럼 결국 그 나라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작품은 이처럼 묵묵히 인생을 살아온 현재 어르신 이민 세대에게 잔잔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배우들의 호연과 호흡도 빛난다. 그중 할머니 순자와 손자 데이빗으로 분한 윤여정과 앨런 김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절로 미소가 나온다. 특히 윤여정은 손자의 짓궂은 장난에도 내리사랑을 보여주면서도 화투와 텔레비전을 즐기는 한국적인 할머니로 완벽 변신했다. 여기에 웃음을 주는 솔직한 모습부터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게 되는 상황까지 깊은 연기 내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앞서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68개의 상을 수상한 작품은 2월 28일 개최되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에 이어 한국계 영화가 두 번째로 오스카상을 수상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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