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윤석열은 대통령감인가
[백세시대 / 세상읽기] 윤석열은 대통령감인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3.12 13:53
  • 호수 76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60대 남자들 사이에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찍어주겠다”는 말이 나온다. 과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통령감인가.

윤 전 총장이 사퇴할 때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강직한 검사’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앞을 내다보며 계산된 행동을 하는 정치인의 싹수를 살짝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는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면서 제1야당의 핵심지역인 대구에 가서 반정권의 기치를 들어보였다. 지난 3월 3일,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고향에 온 것 같다”며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여권의 중수청 설치 추진을 맹비난했다. 

사퇴의 변에는 정치적 야망도 깔려 있다.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어떤 위치에든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자유’, ‘국민 보호’란 말이 정치와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이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점을 선택한 것도 정치인 자질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보수층이 그에게 대선 주자로 직행해주기를 바라는 게 무리가 아니다.

윤 전 총장의 남다른 의리와 리더십은 장점 중 하나다. 그는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늦은 이유가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기 때문이었단다. 고시생 동료가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스스럼없이 알려주다가 정작 본인은 ‘장수생’이 됐다는 일화가 법조계에 잘 알려져 있다.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은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는 순간 사사로운 연을 끊고 시험 준비에 몰두한다. 반면에 윤 전 총장은 친구나 선후배가 상을 당했다고 하면 곧바로 상가에 가서 삼일장 내내 빈소를 지켰다. 그는 “내가 덩치가 커서 상여를 멘 적도 많았다”는 말도 했다. 처지가 변변찮던 고시생 시절에도 인간관계를 우선시 한 셈이다.

검찰총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조문에 관해선 각별했다. 지난해 12월 자신을 대상으로 징계위원회가 열리던 날에도 충암고·서울대 법대 동기의 장례식장에 들러 소주잔을 기울였다. 2019년 12월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밑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던 검찰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도 빈소를 찾아 눈물을 보였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수사팀장을 맡았을 때 정두언 전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조문했다.   

윤 전 총장이 앞으로 해결해야할 숙제는 ▷검찰 수사 악연 지우기 ▷제2의 반기문 안되기 ▷시대정신에 맞추기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첫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이른바 적폐 수사의 선봉에 서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지난 정부 핵심인사들을 구속시킨 악연을 갖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수사로 고통을 겪은 전 정권 인사가 한두 명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표를 얻으려면 이들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2017년 반기문 전 유엔총장은 치솟는 지지율에 잠시 눈이 멀어 대선 직행을 노리다 거친 정치판의 견제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윤 전 총장이 이를 답습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정치적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소명의식이란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를 향해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나갈 힘이다. 

마지막으로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도 과제이다. 대선은 시대정신을 놓고 쟁투하는 과정이다. 시대정신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준비되었다는 사람도 실패한다. 윤 전 총장을 상징하는 법치나 부패 척결,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반대 등의 키워드는 정치·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것은 틀림없지만 대선에서도 먹힌다고 볼 수 없다.

대통령은 의리와 인기, 실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1년여 권력핵심층과 단기필마로 맞선 사람이긴 하지만 ‘종합예술의 장’인 정치판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게 쉽지 않다. 운도 따라야 한다.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윤 전 총장의 관상을 본 한 스님은 “사법시험은 남보다 늦을지 모르나 나중에 크게 될 인물”이라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