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도 “치매 악화 전 후견인 지정해 두면 분쟁 소지 줄어”
성년후견제도 “치매 악화 전 후견인 지정해 두면 분쟁 소지 줄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3.19 13:27
  • 호수 7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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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모 씨 사례로 본 ‘성년후견제도’

의사결정 가능할 때는 ‘임의후견’, 치매 등으로 판단 어려울 땐 ‘법정후견’

통상 가족을 후견인으로 지정… 분쟁 우려시 복지재단 등 제3자 지정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1960~1970년대 한국 영화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배우 윤모 씨. 유명 피아니스트와 아름다운 로맨스로도 화제를 모으며 2010년까지 활발히 활동했던 윤 씨가 2019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리고 최근 윤 씨의 이름이 세간에 또 오르내리고 있다. 그녀의 ‘성년후견인’ 지정을 두고 가족들이 법정 다툼을 벌인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선 2013년 7월부터 도입된 성년후견제도는 치매 노인이나 발달 장애인 등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나 고령 등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떨어진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 대신 일상생활을 관리하게 하면서 피후견인의 치료, 요양까지 돕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후견인은 각종 법률행위와 재산 관리, 사회복지 서비스 이용, 신상 보호 등 피후견인이 사회생활에 긴요하게 처리해야 할 각종 사무들을 대신 처리할 수 있다. 2019년 말 기준으로 후견 개시 건수는 총 3112건, 이 중 성년후견 개시는 2141건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성년후견은 크게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구분된다. 법정후견은 피후견인이 노령·질병 등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워진 이후에 후견인 신청을 하는 방식이고, 임의후견은 본인에게 정신질환이 발생하기 전 미리 계약을 통해 후견인과 후견업무를 정하는 방식이다.

임의후견 사례는 거의 없어

본인이 의사결정이 가능할 때 자신의 후견인을 정할 수 있는 임의후견은 갈등 소지를 줄일 뿐 아니라 ‘본인의 의사를 가장 존중한다’는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와도 부합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는 임의후견 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태다. 2019년 말 기준 임의후견은 단 4건에 불과했다. 

성년후견인 선임은 가정법원을 통해 성년후견인 개시 심판을 청구하면 법원이 심리를 통해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통상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하면 친족이 선정되는 경우가 다수이나 친족 간 갈등이 크거나, 이들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빼돌릴 위험 등이 있을 시 법원은 변호사나 복지재단 등 제3자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한다.

가정법원에서는 성년후견인 개시 심판을 진행하면서 사건 본인에게 후견을 개시해야 할 정도의 정신적 제약이 있는지, 후견을 개시할 필요성이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심사한다. 그 다음 후견에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후견인이 돼야 할지를 살핀다.

후견인의 경우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지정하거나 검사의 신청 등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지인이 아닌 전문가가 후견인으로 선임되기도 한다. 또한 여러 명이 동시에 선임될 수 있다.

후견인은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하면서 피후견인의 복리를 위해 사무를 처리해야 한다. 또한 피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 후견 종류와 심판 내용에 따라 후견인의 구체적인 권한 및 사무가 다르지만, 대체로 재산 관리나 신상 보호가 주를 이룬다.

문제는 윤 씨의 사례처럼 피후견인이 치매 등 질병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후견인의 재산을 둘러싸고 가족 간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 2015년 A그룹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한쪽은 B 명예회장의 정신 건강이 온전치 않다고 주장했고, 다른 가족은 건강하다고 반박했다. 경영권 분쟁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B 명예회장의 동생이 법원에 성년후견인 지정을 요청했다. 법원은 1년 6개월 이상 심리한 끝에 B명예회장이 중증 치매 등으로 정상적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보고 2017년 6월 한 사단법인을 한정후견인으로 최종 확정했다.

가족‧친지가 악용하는 사례도

성년후견인을 가족이나 친지로 지정했을 때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친족상도례란 8촌 이내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 배우자 간 발생한 재산범죄(절도죄·사기죄·공갈죄·횡령죄·배임죄·장물죄·권리행사방해죄 등이 해당. 강도죄·손괴죄는 제외)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특례를 말한다.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로 2017년에 사지마비가 된 동생의 성년후견인이 된 현모 씨가 동생의 보험금으로 자신 명의의 집을 사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법원은 현 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하며 “친족이라고 하더라도 법원에 의해 성년후견인으로 임명되면 법률상 공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에서도 2018년 치매어르신들을 위해 치매공공후견제도를 도입했다. 치매 공공후견제도는 치매로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진 노인이 자력으로 후견인을 선임하기 어려운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후견인을 물색해 가정법원에 후견심판을 청구하고 이후 선임된 후견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해 8월 말까지 총 122명의 치매어르신이 공공후견서비스를 이용했고, 93명의 후견인이 활동 중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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