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대통령 사저 유감
[백세시대 / 세상읽기] 대통령 사저 유감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3.19 14:22
  • 호수 7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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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주변 인물 중 “퇴직 후 귀촌한다”며 시골촌집을 보러 다니는 지인이 있다. 이 지인은 최근 경북 영주 부석사 부근에 매물로 나온 15평 규모의 허름한 촌집을 보고 왔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집은 조금만 손을 보면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마당 앞뒤로 심어진 호두나무, 밤나무에서 열리는 호두와 밤을 까먹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2000만원)이 주변 시세보다 비싸더라도 형질 변경의 번거로움과 비용을 피하기 위해 이 집을 구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기거할 사저를 마련하는 과정에 ‘농지형질변경’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농지를 집이나, 창고, 공장용지로 바꾸어 해당 용도로 사용하려면 농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농지전용허가신청서’를 시·군·구청에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농지형질변경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개 필지 2630.5㎡(약796평)를 샀다. 경호동 터를 포함한 총면적은 6005㎡(약1819평)이다. 문제는 이중 일부가 농지였고 최근에 농지 중 일부를 형질변경을 해 대지로 바꿨다는 점이다. 야당은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특혜가 있었고, 금전적 혜택을 받았다’며 물고 늘어진다. 그러나 농지형질변경은 귀농·귀촌인들도 해온 관습적인 행위로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왜,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퇴임 후 사저로 대궐 같이 거대한 공간을 원할까라는 점이다. 대통령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일개 국민 중 하나다. 30평대 아파트 공간이라면 내외가 충분히 여생을 보낼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이웃과 더불어 지내는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에게 소탈하고 친밀감 있게 비쳐지며 나아가 재임 시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존경과 대접을 이끌어낼 수 있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우리의 대통령들은 철옹성 같은 거대한 건축물 속에 들어앉아 국민과 단절된 채 부하(?)들하고만 똘똘 뭉쳐 정치적 세를 과시하는 모습만을 보여 왔다. 

선진 국가에선 이 같은 후진적인 현상을 볼 수 없다. 9월에 퇴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여느 시민처럼 평범한 아파트에서 산다. 그녀는 총리 선출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아파트를 떠난 적이 없다.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다. 그녀는 퇴임 후에도 당연히 이 집에서 남편과 둘이 지내게 된다고 한다. 메르켈은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고 남편과 저는 매일 집을 청소하고 세탁을 하고 음식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아베 전 일본 수상은 도쿄 시부야구 도미가야에 있는 3층 건물에 산다. 1층은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가, 2층에는 아베 전 총리가, 3층엔 아베 전 총리의 모친이 기거하고 있다. 둘 사이에 자식이 없는 아베 부부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가장 눈여겨 볼만한 이는 스웨덴의 타게 엘란테르 전 총리다. 그는 총리 관저에서 공식 업무만 보고 임대 주택에 거주했다. 퇴임 후 살 집이 없었다. 이를 안 국민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별장을 하나 지어주었다. 

선진국 정상들이라고 퇴임 후 경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은 전임 대통령 경호를 위해 수십 억원의 국민혈세를 쏟아 붓고 있다. 이 같은 과잉보호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왜냐면 지역의 경찰력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스템은 또 다른 ‘적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들의 퇴임 이후 일상사를 책으로 펴낸 김형곤 건양대 교수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무와 역할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며 “미국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원래 살던 집에 머문다. 빌 클린턴까지 42명의 대통령 중 귀향하지 않은 대통령은 병에 걸려 워싱턴DC에 남았던 윌슨 전 대통령 뿐”이라고 했다.

이어 “퇴임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의 존경 받는 리더로 남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사람을 만나 정치활동을 이어갈 생각만 한다. 퇴임 후 대통령이 어디서 사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가 바로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한 단편”이라고 말했다.

15평 촌집에 만족하는 서민의 눈에 1000평이 넘은 대통령 사저가 곱게 비칠 리 없다.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예우가 희박한 이유 중 이런 위화감과 적대감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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