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다시 봄이다!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다시 봄이다!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인연구소 디자이너
  • 승인 2021.03.26 14:12
  • 호수 7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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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인연구소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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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씨는 환경이 안 좋으면

싹 틔우지 않고 ‘휴면기’ 가진 뒤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싹 틔워

코로나 사태를 겪는 우리의 삶도

긴 휴면기 끝에 봄은 올 것

식물은 씨를 맺어 자손을 이어간다. 식물이 씨를 만들 때의 목적과 바람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할 수 있는 한 자손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에 놓아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씨는 부모 식물에서 떨어져 나간 후 바로 운이 좋게 싹을 틔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씨는 억지로 곧바로 싹 틔우는 것을 포기하고 때를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걸 과학적으로는 ‘식물의 휴면기’(plant dormancy)라고 한다. 

이 휴면기 동안 씨는 적당한 조건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기다린다. 어쩌면 매우 간단한 일처럼 보이는 이 선택이 바로 식물이 지닌 가장 큰 ‘생존능력’으로 이 덕분에 식물은 지구의 생명체 중에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숲 속이라는 환경에 살고있는 식물들은 이미 수십 미터 높이로 키를 키우고 살아가는 다른 나무들에 가려서 씨가 땅에 떨어져도 생존이 어렵다. 이럴 때 식물은 성급하게 싹을 틔우는 대신 휴면기라는 기다림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이 숲에 산불이 나거나 혹은 기존의 나무가 오래되어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여 빛이 들어오면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싹을 바로 틔어 낸다. 물론 씨앗이 휴면기를 끝내는 시기는 온도, 물, 빛, 영양분, 연기, 산소 등의 다양한 척도로 스스로 정확하게 그 때를 알아 차린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맞고 올해로 우리는 두 번째 봄을 맞고 있다. 2020년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공포에 마음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우리의 봄도 그렇게 서둘러 가버렸다. 그때는 이렇게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봄을 지나,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한 해 주기가 도는 동안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길 바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려워만 보인다. 그러다 보니 기다림도 지쳐가는 중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뒀던 마음을 풀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위기에 좌절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과는 달리 그래도 어김없이 정원에 봄은 찾아오고 있다. 속초 집 마당엔 3월 초순부터 노란 크로코스가 꽃잎을 열기 시작했다. 해마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먼저 꽃을 피워주는 건 복수초와 크로코스다. 그 뒤를 이어 수선화가 꽃망울을 열고, 히야신스, 무스카리가 피어나면 그 주변으로 휘청거리는 가지에 레이스를 닮은 노란 히어리 꽃도 피어난다. 

속초 정원에서 7년째 늘 같은 주기로 때를 맞춰 순서대로 피어나는 봄의 꽃들이다. 식물뿐이 아니다. 식물의 꽃을 보고 날아와주는 벌들의 행렬도 한결같다. 며칠 전부터 벌들의 윙윙거림이 요란하다 싶었는데 회양목에 꽃이 피어 있는 게 보였다. 회양목에 피는 꽃은 연한 연두색이어서 잎과 함께 있으면 피었다는 것이 감지되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벌들은 회양목의 꽃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그때를 맞춰 찾아와준다. 뭐든 우리 삶에는 때가 있는 듯하다. 그 때라는 것을 내가 결정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나의 주어진 환경이 나와 맞아주었을 때야 비로소 오는 듯하다. 

벌이 꽃이 피기 전 부화를 했다면 굶어 죽기 십상이고, 꽃은 피었는데 벌이 아직 부화를 하지 않았다면 식물도 낭패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휴면기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자연은 아주 오래 전부터 수많은 언어로 우리에게 경고를 보냈다. 

지금 겪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사태 전에도 이미 많은 경고가 있었다. 정원 화단에는 지난 겨울을 견디고 올라온 씨와 뿌리에서 틔워내는 새싹이 어느덧 가득하다. 이 봄 식물은 긴 기다림을 끝내고 싹을 낸 것이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긴 기다림의 휴면기를 갖고 있는 식물도 분명 있다. 

지금 우리의 때도 ‘아직은’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언젠가 드디어 때가 왔다고 깨달아지는 순간까지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이 봄날을 잘 보내야 할 듯하다. 언제나 그랬듯 기다림의 끝에 늘 바라던 ‘봄’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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