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대통령의 선택
[백세시대 / 세상읽기] 대통령의 선택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4.02 13:56
  • 호수 7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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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사에는 감초처럼 ‘국민과 잦은 소통’이란 말이 들어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이 말은 허언이 돼버렸다. 시장엔 들렀지만 상인과의 대화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낳았고 광화문 광장에선 토론회를 열지도 않았다(광화문 광장은 토론회를 열 공간은 고사하고 산책도 할 수 없는 공사판이 돼버렸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적폐청산과 개혁을 앞세워 반대편을 철저히 무시하는 정치를 해왔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는 최근 한 칼럼에서 “국정의 중심에 대통령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라고 한 후 다음과 같이 길게 그 이유를 부연 설명했다. 

“조국 사태로 온 나라가 둘로 쪼개졌지만 대통령은 없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고 추미애 장관이 난리를 쳐도 대통령은 거기 없었다. 집값, 전세값 폭등으로 국민이 패닉 상태일 때도 그랬다. 문 대통령 리더십의 특징은 침묵, 부재, 유체이탈이다. 있어야 할 때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엉뚱한 때 엉뚱한 곳에서 뜬금없이 등장한다. 집값이 심각한데도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한다.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라고 욕하는데도 ‘김정은과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길동무’라고 한다. ‘백신 확보가 늦은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걱정해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비현실적이고 알맹이가 없고 맥락이 닿지 않는 언행이다.”

문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이번 부동산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는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부동산부패청산’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농지 취득 심사를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은 작년 4월 경남 양산 농지를 10억4000만원에 샀고 이 땅은 대지로 변경됐다. 땅값은 3억5000만원 올랐다고 한다. 농지취득을 하려면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계획서에 ‘영농 경력 11년’이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이 11년 농사를 지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야당이 이 문제를 제기하자 “좀스럽다”고 비난했다. 본인은 믿을 수 없는 영농 계획서로 농지를 사서 대지로 바꿔놓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면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묘목을 빼곡히 심어 투기하는 적폐도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 처남은 경기 성남시에 보유한 그린벨트가 수용되면서 49억원의 토지 보상 차익을 얻었다. 지금도 인근에 처남이 보유한 그린벨트에는 묘목이 빼곡히 심겨져 있다. 처남은 문 대통령이 말한 묘목 보상금을 노린 적폐에 해당하지 않는 건가. 문 대통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남 얘기하듯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총통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렸다. 탈(脫)원전부터 시작해 4년여 만에 이 나라를 거의 해체수준까지 만들어버렸다. 안보만 보더라도 공산주의자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로 규정하고 국방백서에서 북한 주적 개념은 빠지고 한미연합훈련은 형식화되고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은 폐지됐다. 그 사이 북한은 실질적 핵보유국이 되고 전술핵 개발까지 공언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를 1년여 남겨두고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방법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열성 지지자들의 모든 행태를 감싸기만 하지 말고 간절한 자세로 그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이제 정의로운 증오의 발산을 중단하고 겸손한 자세로 각자 선 자리에서 일상적 삶의 작은 민생 개혁을 위해 애써 달라고 말이다. 열성 지지자들이 반대편을 상종할 수 없는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행동에 대한 책임도 결국은 문 대통령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노력 여하에 따라 국민에게 존경과 대접을 받는 대통령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역대 대통령들처럼 원망과 멸시의 대상으로 남을 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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