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더’…‘치매 노인의 눈에 비친 세상’ 색다르게 그려
영화 ‘더 파더’…‘치매 노인의 눈에 비친 세상’ 색다르게 그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4.09 14:55
  • 호수 7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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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치매 환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관객들이 치매로 기억이 엉망이 되는 느낌이 어떤지를 체험하게 해준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이번 작품은 치매 환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관객들이 치매로 기억이 엉망이 되는 느낌이 어떤지를 체험하게 해준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환자 관점서 이야기 전개… 실제와 현실을 혼돈하는 심리 생생히 전달

치매환자의 비애 간접체험… 오스카상 후보 오른 안소니 홉킨스 열연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현재 국내에는 80만명의 치매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1명이 자신을 서서히 잃어가며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해 치매를 소재로 한 영화‧드라마도 자주 제작된다. 2017년 개봉한 ‘살인자의 기억법’처럼 색다르게 접근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치매 환자의 비애를 다루는데 집중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치매 환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면 어떨까. 

4월 7일 개봉한 ‘더 파더’는 이러한 신선한 관점에서 치매 문제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1991년 ‘양들의 침묵’에서 10분 정도의 짧은 출연으로도 관객과 평단을 압도했던 안소니 홉킨스가 또 한번 인생 연기를 경신하는 호연을 펼쳐 주목받고 있다.

은퇴 후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80대 노인 ‘안소니’(안소니 홉킨스 분). 비록 혼자 살지만 남부럽지 않은 저택에서 오페라를 들으며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런 그가 걱정됐던  딸 앤(올리비아 콜먼 분)은 아버지를 위해 간병인을 붙여주려 하지만, 까탈스러운 안소니는 혼자 잘 지낼 수 있다며 매번 간병인을 못살게 굴어 쫓아낸다. 

딸 존재조차 낯설어진 주인공

이에 앤은 아버지에게 새 남자친구와 파리에 가겠다고 선언한다. 이 순간부터 안소니는 앤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혼란스러운 일들이 잇달아 벌어진다. 처음 보는 남자가 거실에 앉아 사위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여자는 스스로 딸이라고 말한다. 곧이어 다시 익숙한 모습의 딸이 나타나지만, 이번엔 자기는 파리에 가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급기야 딸과 사위는 이 집이 앤서니의 집이 아니라 자신들 집이라고 전한다. 앤서니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집을 차지하려는 딸과 사위의 음모처럼만 느껴진다.

작품은 실제 치매 환자의 입장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한다. 안소니의 기억이 뒤죽박죽 되면서 알고 있던 이들이 자신과 자신의 집을 노리는 침입자로 변하는 순간을 마치 스릴러 영화처럼 표현한다.

실제로 관찰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몰라봐주는 치매 환자가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겠지만 기억이 뒤엉킨 치매 환자 입장에서는 되레 상대방이 무서운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다. 작품은 이러한 치매의 비애를 환자의 관점에서 충실히 전달한다. 진짜 현실과 안소니가 보고 기억하는 현실을 어지러이 오가며 관객들조차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어느 시점에 벌어진 일이며, 과연 진짜 앤과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맞는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이 봤던 것에 관해 의심하게 한다. 

주변 사람의 아픔까지 조명

작품은 이처럼 긴박하게 전개되지만 반전(反轉) 영화는 아니다. 안소니가 습관적으로 하는 몇가지 행동들로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유독 손목시계에 집착하는데 간병인이 훔쳐갔다고 하기도 하고, 스스로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가 못 찾기도 한다. 사위가 찬 시계를 의심하며 “영수증이 있냐”고 묻기도 한다. 이를 통해 안소니가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빼앗기는, 즉 치매로 고통받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치매 환자의 혼란과 두려움뿐 아니라 그로 인한 주변인의 갈등과 아픔까지 두루 조명한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 앤 역시 안소니가 기억을 잃어감에 따라 점차 아버지와 자신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통해 작품은 엔딩자막이 올라갈 때쯤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만든다. 치매 환자를 어떻게 돌보는 게 맞는지,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들을 배려하고 보호할 수 있을지 등에 관해 고민하게 한다.

무엇보다 80줄에 접어든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열연이 돋보인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배역을 맡아 기억이 엉망이 돼 혼라스러워하는 노인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노배우의 현재 모습과 겹쳐지며 더더욱 처연한 감정을 만들고, 극 중 인물에 더욱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안소니가 결국 과거로 돌아가 엄마를 부르짖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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