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조금씩 매일하기, 마이크로바이옴 식탁 / 신은경
[백세시대 금요칼럼] 조금씩 매일하기, 마이크로바이옴 식탁 / 신은경
  • 신은경 차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21.04.23 14:23
  • 호수 7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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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차의과대학 교수
신은경 차의과대학 교수

 장 튼튼히 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실천하면 생활에도 활력 생겨

 처음엔 탐탁지 않게 보던 남편도

 마지못해 따라했는데

‘장 검사’ 결과 좋은 점수 나와

매일 먹는 하루 세끼 밥이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고, 매일 자는 잠이 고단한 일상의 피로를 몽땅 씻어준다. 매일 마시는 공기가 우리의 숨을 고르게 하고, 매일 마시는 물이 몸의 양분과 혈액을 실어 나른다. 이렇게 특별한 생각 없이 매일 하는 모든 일이 기적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데, 운동이나 건강한 식탁 챙기기 같은 관심은 마치 특별한 각오나 결심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어려워한다.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8월 말부터였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끝나지 않는 역병에 사람들은 지쳐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후배의 권유로 시작한 이름도 어려운 ‘마이크로바이옴(이하 마바옴) 식탁 실천하기’는 이제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사람에 따라서는 과다했던 체중이 저절로 줄어들기도 하는데, 내 경우는 특이하게도 별 변화가 없는 편이다. 

마바옴 식탁은 다이어트를 위한 빼기 식탁이 아니라 좋은 것을 더 먹는 더하기 식탁을 지향하고 있다.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반은 먹지만, 나머지 반은 장내 미생물이 좋아하는 식재료를 자연과 가깝게 함께 먹는 것이다. 

위나 소장에서 곧바로 소화돼 버리는 쌀밥이나 하얀 밀가루 같은 음식이 아니라, 대장까지 내려가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거친 음식들을 챙겨 먹는 것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야채, 뿌리채소, 선명한 색깔의 과일, 다양한 씨앗과 견과류, 도정하지 않은 곡물 등의 음식들을 일주일에 30가지 이상 다양하게 먹는다. 

장에서 살고 있는 38조개의 미생물에게 다양한 먹잇감을 제공해주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건강해진 장은 뇌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피부를 빛나게 하고, 배변을 훌륭하게 개선하며, 생활에 활력을 준다. 

마바옴 식재료로 차린 반반접시(큰 접시 하나에다 나 먹을 거 반, 장내 미생물이 좋아할 것으로 나머지 반을 담은 한 접시)를 아침상에 차려놓으면 남편은 마지못해 먹으면서도 탐탁지 않은 얼굴을 했다. 게다가 평생 하지 않던 음식 사진 찍기를 하니 마뜩치 않을 수밖에.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이를 권해 준 후배를 비롯한 일단의 그룹이 SNS에 오늘 먹은 마바옴 음식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숙제 제출의 의미도 있고, 서로 정보도 얻고 격려하기도 한다.

평소 식사 때에도 나는 주로 젓가락을 들고 먹고, 남편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다시 말하면 나는 국도 건더기를 주로 건져 먹고, 밥도 젓가락으로 그리고 반찬은 죄다 먹는 편인데, 남편은 하얀 쌀밥 한 숟가락 먹고, 깍두기도 국물만, 시금치국도 국물만, 그렇게 먹는 편이었다. 

그런데 작년 내내 소화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불편해하던 남편은 마바옴 식탁을 마지못해 따라와 주다가 이젠 마바옴 식탁의 조용한 동역자가 됐다. 지난주 장 검사에서 아주 훌륭한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입이 심심하다고 할 때 당근과 오이를 길죽길죽 하게 썰어다 앞에 놓으면 반가워하기까지 한다.

마바옴 식탁을 즐겨찾는 이들은 ‘밀가루 끊기’도 한다. 앱을 다운받아 2주간 실천하는데, 면 종류만 끊어도 되고, 빵 종류만 끊어도 되고, 둘 다 끊으면 더 좋다. 그런데 신나는 것은 2주 동안 4번의 찬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3~4일에 한 번은 ‘찬스!’ 하고 외치고 살짝 먹고 싶은 토스트나 스파게티, 잔치국수를 먹어도 된다. 지혜롭게 찬스를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2주간 밀가루 끊기 도전을 할 수 있다.

나는 오늘로써 7회차 밀가루 끊기 도전을 마쳤다. 그러니까 작년 11월부터 도전한 것이 벌써 일곱 번째가 된 것이다. 처음엔 무심코 손이 가는 빵과 과자 종류와 국수가 먹고 싶어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하며 후회도 했지만, 6개월이 다 되어가는 7회차 도전에는 2주일 중 한 번만 찬스를 쓰는 아주 훌륭한 기록을 남기게 됐다. 

사실 밀가루가 무슨 죄일까마는, 혹시라도 속이 늘 더부룩하고 피부트러블이 있거나, 알레르기가 있거나 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도전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도전을 잠시 쉬고, 그동안 먹고 싶었던 토스트와 만두, 피자를 좀 먹어 보려 한다. 그리고 다시 8회차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가는 비가 옷을 적시는 것처럼 조금씩, 매일 하는 일이 무섭다. 매일 조금씩 하는 행동의 변화가 나의 삶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겉으로 드러난 나의 몸보다 보이지 않는 곳의 나의 몸 건강을 챙기는 것이 지혜롭지 아니한가. 장이 편해야 얼굴표정도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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