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시련을 이기는 회복탄력성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시련을 이기는 회복탄력성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1.05.21 14:53
  • 호수 7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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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중병을 앓거나 실직‧이혼‧사별

또는 재해 등 시련을 겪으면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돼

이를 이기는 게 회복탄력성

심리적 거리두기 등 필요

몇 년 전 어처구니없는 일로 2년 남짓 법적 분쟁에 휘말려든 적이 있다. 상대방은 사실을 왜곡하고 집요한 법 요리꾼(변호사)을 동원해 승소했다. 난 패소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패소한 내용 그 자체를 인정하기 어려웠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나.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의 사특하고 득의만만한 미소를 떠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많았다. 아내와 나는 이 패배를 지혜롭게 극복해내야 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여파가 일상생활을 해치지 않도록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 일은 그것대로 치열하게 대응해 나가되 우리의 일상은 동요됨 없이 정상적으로 해나가자는 것이었다. 때때로 말할 수 없는 분노심이 치솟았지만 애써 외면하려 했고 결국 우리 자신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었다.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중병을 앓거나, 실직·이혼·사별을 경험하거나, 폭력·학대·재해를 당하는 등 삶의 중대한 시련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분노, 좌절, 슬픔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 정신적 충격이 때로 자신의 신체를 해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건의 결과로 생긴 부정적 감정의 거센 파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상황을 겪은 후 이전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능력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 한다. 중대한 신체적 및 정신적 손상의 후유증을 극복하여 정상생활로 복귀하려는 능력이다. 역경과 고통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르는 마음의 근력이기도 하다. 회복탄력성을 증진시키는 요인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중요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적응 유연성이다. 이는 주어진 환경에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역경을 통과할 때 자신이 내면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잠재능력이나 가족과 친구 등 주변의 도움을 활용하여 이를 견뎌내는 힘이기도 하다. 

우리는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데도 외부에 도움 요청을 꺼리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정신적 충격으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병리학적 증상이다. 마음을 열어 자신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있는 경우, 그리고 주변에 진정한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적응 유연성이 높아진다.  

둘째는 거리 두기이다. 불행한 일의 충격에 매몰되어 삶 전체를 망가뜨리게 놔두지 말고 그것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심리적 공간, 즉 완충지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정신치료의 대가 데이비드 호킨스는 말년의 저서 ‘놓아버림’에서 삶의 고통과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감정은 감정일 뿐 감정을 나와 동일시하지 말 것”을 제안하였다. 

어떤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에 말려들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멀리서 지켜보면서 스스로 제 갈 길을 가도록 놓아두라는 것이다. 치유명상의 한 형태인 마음챙김(mindfulness)에서는 떠오르는 생각을 없애려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 난 것을 알아차리고 그냥 놔둔다(letting go). 

아픔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그 아픔에 빠져있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내면의 자유를 얻게 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염려로부터 벗어나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 

셋째는 의미 찾기이다. 그 사건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지금은 견디기 어려운 불행한 일이지만 넓게 보면 인생에 있어서 성장이나 깨달음 등 유익한 측면이 있을 수 있음에 주목한다. 이것은 그 어려움을 승화시켜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때 종교가 큰 힘이 된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세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참되고 영원한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현세에서 겪는 어려움을 내세에서 얻게 될 희망으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평소 겸허한 자세를 갖고 영적 삶을 추구해왔던 사람들에게 실현되는 열매이다. 

오래 전 나와 몇 번 공동연구를 수행했던 어느 여교수의 남편이 설악산에서 실족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영결식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아빠와 남편은 이제 이 땅에 없지만 우리 가족이 하던 일은 변함없이 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녀는 애도기간을 잘 넘기고 계속 좋은 연구 성과를 내었으며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나이가 많아도 사명감을 잃지 않고 긍정적 사고를 습관들여 왔던 사람은 인생의 위기를 맞아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상실의 계절’이라 일컫는 노년기에 더욱 필요한 자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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