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49] 삼연의 호환(虎患)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49] 삼연의 호환(虎患)
  • 이승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1.05.28 13:13
  • 호수 7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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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연의 호환(虎患)

마구간이 불타 죽는 것보다 더 심한 화이니

제 명을 다 산 것이라면 죽은들 누가 슬퍼하랴

그저 첩첩산중 향한 원망 깊고

아직도 성근 울타리엔 핏자국 남아있네

늙은 암말은 그리움 속에 홀로 남았고

바깥의 거위는 밤에 울어 경보함이 더뎠어라

어이하면 사나운 범을 베어다

가죽 깔고 누워 이 마음 통쾌히 할까

禍甚於焚廐(화심어분구)

天年死孰悲(천년사숙비)

寃深只疊嶂(원심지첩장)

血在尙疎籬(혈재상소리)

老㹀依風獨(로자의풍독)

寒鵝警夜遲(한아경야지)

何由斬白額(하유참백액)

快意寢其皮(쾌의침기피)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삼연집(三淵集)』 권5 「말이 범에게 물려간 것을 슬퍼하며[哀馬爲虎所噬]」 제1수


전통 시대에 호환마마(虎患媽媽)는 극악한 재앙이었다. 죽음이야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이거니와 범에게 물려가 육신이 찢어발겨져 참혹하게 잡아 먹혀 시신도 찾지 못하고, 역병으로 어찌 손쓸 도리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순식간에 황망히 죽는 것은 참으로 제 명에 죽지 못하는 참화(慘禍)였다. 우리는 항용 호환마마라는 말을 쓰지만 조선 시대 명망 있는 사대부들은 대개 인가가 밀집한 지역에 거주하거나 혹 은거한다 할지라도 완전히 깊은 산중에 따로 혼자 거처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므로 호환의 참상을 글로 남긴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삼연 김창흡만은 특이하게 일생동안 무려 세 번이나 호환을 당했다. 『삼연집』의 어록(語錄)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선생이 설악산 영시암(永矢菴)에 계실 때 거사(居士) 최춘금(崔春金)이 판자방에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야밤에 홀연 산이 무너질 듯 범이 우는 소리가 나더니 선생을 모시던 노비가 놀라 소리치기를 “거사가 없어졌습니다”라고 하였다. 모두 황망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노비 두 사람이 판자방에서부터 밖으로 나가면서 횃불을 들어 살펴보니 옅게 깔린 눈 위에 혈흔이 남아 있었다. 선생이 멍하게 한참을 있다가 말하기를 “내 일찍이 이 범놈에게 말을 잃고 또 노복을 잃었는데 지금 다시 이런 변고를 당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이튿날 아침 승려들을 불러 모아 산에 올라 찾게 하였는데 승려들이 돌아와 단지 머리와 발만 남았다고 알리므로 다비하도록 하였다. 선생이 비로소 대성통곡하고 마침내 산을 나가기로 하였다······.

머리와 발만 수습했다는 위의 기록에서 당시의 참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삼연은 무슨 연고로 이렇듯 세 차례나 호환을 만났을까. 이는 삼연이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이고 명망 있는 선비였음에도 일생의 많은 시간을 깊은 산중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마치 산승(山僧)처럼 판잣집을 짓고 살았던 독특한 이력에 기인한 것이다. (중략)

오늘 한시 감상에서 갑자기 호환을 거론한 것은 단순히 호환의 참상을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바로 조선 후기의 대문호인 삼연의 외롭고 처절한 심정을 엿보기 위한 단초로 거론한 것이다. (중략) 추상적인 감정을 자기만의 상징어로 표현하는 그의 방식은 어떤 면에서 현대시의 추상성과도 닮아 있다. 이러한 획기적인 시는 바로 그가 처한 가혹한 내면 상황에서 배태된 것이다.(하략)    

이승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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