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1952, 아주 보통의 나날들’ 전, 전쟁의 참화 속에도 삶은 계속되고 웃음꽃도 핀다
전쟁기념관 ‘1952, 아주 보통의 나날들’ 전, 전쟁의 참화 속에도 삶은 계속되고 웃음꽃도 핀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5.28 15:10
  • 호수 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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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손에 꽃을 쥔 소녀. 요새 아이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고사리손에 꽃을 쥔 소녀. 요새 아이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미 사진병 슐레신저가 한국전쟁 당시 소시민의 삶을 담은 120여점  

해맑게 노는 아이들을 비롯 고통 속 평범한 삶의 현장 진한 여운 남겨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5월 2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31장의 사진이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해맑은 미소를 가진 어린아이, 개구진 표정을 짓는 학생, 아름다운 젊은 여성, 그리고 수염을 기른 노인까지. 제각각 생김새는 달랐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밝고 행복해 보였다. 놀라운 점은 이들이 찍힌 장소가 전쟁으로 뒤숭숭했던 1952년의 한국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 육군 사진병이 찍은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을 담은 전시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 7월 18일까지 진행되는 ‘1952, 아주 보통의 나날들’ 전에서는 ‘폴 굴드 슐레신저’가 기록한 120여점의 사진들을 통해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삶을 개척해나간 어르신 세대의 옛 모습을 되돌아본다. 

전시에 소개된 사진은 미 육군 226통신중대 소속 사진병으로 한국전쟁에 파견된 슐레신저가 지난 2011년 6월에 기증한 1000여점과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슐레신저의 딸, 게일 펠키로부터 추가로 기증받은 300여점 중에 가려 뽑은 것들이다.

전시는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 ‘저마다의 자리에서’, ‘함께 부대낄 수 있다는 것’, ‘평범하지만 찬란한’ 등 각각의 소주제에 따라 사진을 구분했다. 기획의도를 담은 글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슐레신저가 간단하게 기록한 메모와 사진 영상들로만 구성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만두를 파는 여인의 모습을 찍은 ‘음식을 팔고 있는 여인’의 경우 사진과 함께 “우리는 이 여인을 20야드 정도 지나쳤다가 다시 여인을 찍기 위해 돌아왔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자신의 일과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와 같은 슐레신저의 실제 메모를 함께 전시하는 식이다.

옛 시골 풍경 옮겨놓은 듯 정겨운 사진 많아

그가 포착한 당시 어른들의 모습은 마치 과거 시골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냇가에서 평온하게 빨래를 하는 아낙네, 소를 이용해 써레질(모내기 직전 논의 흙덩이를 부수고 바닥을 편평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볏단을 묶는 농부 등의 모습은 전쟁 이후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한 고아원의 아이들을 찍은 단체사진. 슐레신저는 ‘일부만 촬영한 것’이란 메모를 남겼다. 
허술하게 만든 지게차를 타고 해맑게 노는 아이들. 

아이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슐레신저는 유독 해맑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담아 냈다. 구슬치기를 비롯해 공기놀이, 사방치기 등 각종 놀이를 하는 모습부터 여름에 수레를 타고, 겨울에 썰매를 끌고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흐뭇하기까지  하다. 

다만 남매가 함께 ‘아이스께끼’를 팔거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빵을 만드는 모습 등은 학업에 집중하는 지금의 아이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옛 시장의 모습도 많이 담고 있다.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척박한 공간이지만 사람들은 북적거리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물건을 사고 팔았다. 이중 거대한 얼음을 조각내서 레몬에이드를 팔고 있는 상인의 모습, 한복을 입고 갓까지 쓴 사람과 양장을 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암시장 풍경은 신선했다.

또 전시장 곳곳에는 전쟁의 상흔이 담긴 사진도 소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아원 단체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부모를 잃은 수십 명의 아이들이 수녀들과 함께 뻣뻣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상당수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를 짓고 있는 데다가 ‘그들 중 일부만 촬영한 것이다’라는 메모까지 더해져 슬픔은 더 크게 느껴진다.

폭격 맞은 집 등 전쟁의 상흔도 담아 

폭격으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도 먹먹하게 다가온다. 집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벽돌만 무성한 그 현장에서 덤덤하게 밥을 지어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쟁의 고통을 잘 보여준다.

또 전시에서는 슐레신저와 그의 부인인 김명숙 씨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는 자료도 함께 소개한다. 슐레신저는 사진병으로 참전했을 당시 사진 메모를 타이핑 하는 일을 같은 사무실에 일했던 김 씨에게 맡겼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친해졌는데 이러한 관계는 1954년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어졌다. 슐레신저는 김명숙 씨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그녀의 집주소를 고무도장에 새기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슐레신저는 이 고무도장을 이용해 편지를 써 김 씨에게 지속적으로 미국 유학을 권했다. 김 씨는 결국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1956년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전시에서는 고무도장과 함께 두 사람의 달달한 러브스토리도 소개한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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