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인생의 꿈이 없는 기성복 인생 여정 / 최성재
[백세시대 금요칼럼] 인생의 꿈이 없는 기성복 인생 여정 / 최성재
  •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1.06.04 13:59
  • 호수 7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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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 젊은이들은 꿈 팽개치고

‘일단 취업하고 보자’에 올인

취업이 출발역 아닌 종착역이 돼

퇴직 예정자들이여, 꿈 위에

재취업 계획 세워 멋진 인생 살길

인생의 꿈은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나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장래에 이루어 내고자 하는 목표를 말한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꿈이 있기에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가지며, 그 꿈을 이루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를 유발하고, 노력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 꿈을 이룸으로써 진정한 인생의 행복과 기쁨과 삶의 보람을 느낀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성장과 교육과정 그리고 직업선택 과정이 정형화되고 인생 여정 전체도 정형화되어버리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인생 여정이 정형화된 틀 속에 갇혀버리다 보니 인생의 꿈은 교육과정과 직업선택 과정에서 한갓 헛된 상상이나 환상으로 전락하여 더이상 꿈꿀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세계적 아이돌 그룹 BTS(방탄소년단)는 2013년 데뷔곡의 하나인 ‘No More Dream’(더 이상 꿀 필요 없어)에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슬픈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 노래 가사 일부는 다음과 같다. 

“얌마 네 꿈은 뭐니? 허허, 난 참 편하게 살아. 꿈 따윈 안 꿔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 전부 다 똑같이 나처럼 생각하고 있어. 새까맣게 까먹은 꿈 많던 어린 시절, 대학은 걱정마. 멀리라도 갈 거니까. 네가 꿈꿔 온 네 모습이 뭐야. 너의 길을 가라고. 어른들과 부모님은 틀에 박힌 꿈을 주입해. 장래 희망 No. 1. 공무원. 강요된 꿈은 아냐. 지옥 같은 사회에 반항해. 꿈을 특별 사면, 억압만 받던 인생, 네 삶의 주어가 되어 봐. 너의 길을 가라고, 나약함은 담아 둬. 살아가는 법을 몰라. 날아가는 법을 몰라. 결정하는 법을 몰라. 이젠 꿈꾸는 법도 몰라. 자 다시 꿈을 꿔 봐!” 

다음은 2019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 임보운 기자의 ‘기자의 시각: 취업이 종착역인 사회’이다. 기사에선 우리나라 대학 졸업 후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한 청년의 미국 월가(Wall Street) 방문과 다른 한 대학 재학생의 영국대학 방문 일화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냐는 취업준비생의 질문에 미국 대학생의 답변은 (한국 청년이 보기에 답답하게도?) “취업해서 내가 가진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어떻게 회사에 접목할지 계획을 짜고 있어”였다. 

영국대학 방문 대학생의 소감은 “내 주변 친구들이 대기업 인・적성시험을 위해 ‘접은 종이에 구멍을 뚫고 펼쳤을 때 어떤 모양이 될까’하는 문제를 풀고 있을 때, 런던 대학생들은 각자의 호기심을 세상에 어떻게 내놓을지 고민하고 있더군요”였다. 

미국과 영국 대학생들은 자기 인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직장에 취업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데, 한국 젊은이들은 꿈 따윈 팽개치고 일단 취업하고 보자는 단기적 목표에 올인(all-in)하고 있다. 취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출발역이 아니라 종착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들에 의해 꿈을 강요당하면서 잃어버리고 있고, 어린 시절부터 꿔 온 인생의 꿈을 가꾸거나 다시 제대로 된 인생의 꿈을 꿔야 할 대학생들은 남들이 하는 과정을 따라 졸업하고 취업하는 자체가 목표(종착역)이고 그 이후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기성복 인생 여정을 가고 있다. 이 같은 기성복 인생 여정이 우리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라 항변할 수 있는가? 

기성복 인생 여정은 청년기와 중년기를 넘어 장년기(60~70대), 노년기에도 큰 차이 없이 계속되는 것 같다. ‘재취업지원 서비스’는 2020년 5월부터 정부가 50대 이후 정년퇴직과 이직을 앞둔 직장인들에게 기업이 제공하기 바라는 서비스를 말한다. 

필자가 속해 있는 한국생애설계협회에서 고령자고용법 개정(2019년 4월)에 따른 기업의 ‘재취업지원 서비스 지침’ 마련의 정부 용역을 수행한 바 있다. 용역보고서 내용은 재취업지원 서비스는 60세 이후 30~40년 인생의 꿈을 확립하고 실현하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생애설계 기반의 재취업지원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과 이론과 원칙을 제시했고 정부에서도 수용하여 용역보고서대로 기업에 지침을 제시했다. 

기업이나 퇴직예정자들이 그 지침을 새롭게 받아들일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실적주의, 단기적 시각, 현실 지향적으로 해 왔던 전직·재취업지원 서비스를 생각하면 “꿈 따윈 안 꿔도 돼, 아무도 뭐라 하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인 기성복 인생 여정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 우려된다. 재취업지원 서비스가 남은 인생에서라도 멋지게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중․장기적 시각에서 이루어지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퇴직예정자들도 꿈을 잃어버린 청소년처럼, 인생의 꿈 없이 일단 재취업하고 보자는 생각이니, 가장 성숙해야 할 인생의 시기에서조차 단기적 재취업을 종착역으로 여기고 끝까지 기성복 인생 여정을 가려는 것이 100세 시대의 인생 후반기 삶의 바람직한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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