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냄새 잘 맡으면 오래 산다”
[백세시대 / 세상읽기] “냄새 잘 맡으면 오래 산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6.11 13:49
  • 호수 7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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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1조 개에 달하는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시각은 겨우 500만 개의 색깔만을 구분해 낸다. 청각은 특정 음역보다 높거나 낮으면 듣지를 못한다. 하지만 구분할 수 있는 냄새는 1조 개에 달한다. 따라서 인간은 후각적 동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1조 개에 달하는 냄새들은 1000여개의 수용체에 의해 구분된다. 수용체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감각 자극 가운데 화학적 환경보다 복잡한 건 없기 때문이다. 냄새에는 수백 가지 분자가 섞여 있는데 분자들이 세포 점막을 통해 전달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각각 다르다. 그래서 어떤 분자는 빠르게, 어떤 분자는 천천히 수용체에 전달된다. 뇌는 수백 밀리 초 단위로 이루어지는 목표 도착 순서에 따라 분자를 하나하나 파악하고 결론을 내린다. 일례로 바나나 냄새는 350개의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커피 향은 800개의 분자로 구성됐다. 무의미한 분자들이 차차 서로 결합하면서 하나의 의미 있는 완전체로 바뀐다. 그때 비로소 “아하, 바나나로군!”하고 알아차린다.

우리 인간은 냄새로 어떤 상태, 어떤 성적 갈망, 어떤 감정만을 꼬집어 맡아 내지 못한다. 남녀 불문하고 남성의 체취는 여성의 체취보다 더 강하게 그리고 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남성의 체취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더 강하게 평가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싱글남의 냄새는 연인이 있는 남자의 냄새보다 강하게 묘사되는데 실제로도 싱글남의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더 높았다. 여성의 체취는 월경 주기에 따라 달라졌다. 번식을 위해 배란기 때 가장 쾌적한 냄새가 풍겼다.  

흔히 배우자의 체취가 낯선 사람의 체취보다 좋게 묘사되는데 이는 아마도 타인의 체취보다 배우자의 체취에 훨씬 더 자주 노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껏 어떤 특정한 견해도 없었던 것을 자주 그리고 오래 경험할수록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껏 좋다, 나쁘다 등 어떤 견해도 없었던 사람을 자주 만나면 대개는 그를 좋아하게 된다. 이를 우리는 ‘단순노출효과’라 부른다. 

후각과 우울증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연구 결과 우울한 사람은 냄새에 덜 민감했고 대개는 확실하게 맡을 수 있는 강한 냄새만 지각해 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감정적인 그림과 냄새를 제시하고 이들의 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그림에 대해서는 건강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이 전의식(현재는 의식되지 아니하나 생각해내려고 하면 약간의 노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지식이나 정서, 심상과 같은 정신의 범위)작업이 이뤄졌으나 냄새에 대한 전의식 작업은 감소했다. 냄새는 느리게 처리됐고 정보는 불충분한 상태로 뇌에 전달됐다. 

정서적인 뇌의 변연계가 활동하는 데 있어 핵심 장치는 ‘후각 망울’(olfactory bulb·후각세포로부터 받은 신경 자극을 대뇌에 전달하는 후각 신경 부위)인데 우울증 환자의 경우 이 후각 망울의 신경망이 엉망이 된 상태라 근처의 정서적 뇌를 최적으로 다를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후각 망울의 제어를 받는 편도체에서 부정적인 경험이 부호화되기 때문에 후각 망울이 똑바로 기능하지 않으면 제어 기능도 멈춰 버린다. 그 결과 부정적인 사건들은 더 강하게 경험될 것이며 이러한 상태가 오래 계속 되면 우울증이 유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스웨덴의 정치가 마리아 라르손은 10년 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 후각 능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냄새를 잘 맡는 사람보다 치사율이 약 20% 높았다고 발표했다. 추적 대상은 40대 이상 성인들로 나이, 성별, 기저질환, 치매 등은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후각과 치사율의 상관관계는 두 가지 가설로 설명 가능하다. 첫 번째는 ‘후각 망울’이 그 자체로도 중요하기에 정서 및 기억 활동에 주로 관여하는 편도체와 해마가 활성화되려면 후각 망울도 함께 잘 기능해야만 한다는 논리다. 두 번째는 냄새를 못 맡을수록 친구가 적고 사회적 관계망도 좁다는 논리다. 다행인 것은 후각은 연습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기사는 독일 뒤셀도르프대 생물 및 사회심리학과 교수 베티나 파우제가 쓴 ‘냄새의 심리학’(북라이프)에서 발췌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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