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나를 기억해줄까”
[백세시대 / 세상읽기]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나를 기억해줄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6.25 13:44
  • 호수 7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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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까운 지인들 모임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이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내가 죽으면 가족들이 나를 알아줄까?” 그러자 다른 지인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기업하는 지인은 “아내나 자식들에게 베풀었던 것, 자기들을 부양하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들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죽은 다음에 뭘?”하는 생각에 실소가 나왔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에겐 그런 문제들이 심각하게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또 다른 지인이 “자네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만큼 자식들도 자네를 똑같이 생각할 걸”이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은 수시로 죽음을 걱정한다. 로마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 4.26~180.3.17)는 게르만족 등 이민족들과의 전쟁 와중에 ‘명상록’이란 ‘무거운’ 책을 썼다. 이 책에는 대인 관계와 처세, 우주의 본성, 신들의 존재 방식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겼다. 그런데 중간 중간 죽음에 대한 단상도 들어 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라는 불안과 긴장, 공포의 시간이 그로 하여금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어릴 적부터 수사학, 법학, 미술 등을 공부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였다. 스토아철학은 도덕 가치, 의무, 정의, 굳센 정신 등과 같은 덕목에 중심을 두고 보편적인 우애와 신처럼 넓은 자비심을 강조한다. 그가 어떤 인물을 지향했는지는 명상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의 명성과 회상에서 겸손과 남성적인 기질을 배웠다”, “어머니에게서는 경건과 인덕(人德), 그리고 나쁜 행위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도 버려야 할 것을 배웠으며, 부자들의 습성에서 멀리 떠나 소박하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아우렐리우스는 죽음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명상록에 “죽음이 분산이거나 또는 원자의 분해이거나, 혹은 허무에의 귀화일지라도, 결국 소멸 또는 변화”라고 썼다. 

그는 죽음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죽음도 자연이 원하는 여러 사물 중의 하나이고 보면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즉 인간이 청년이 되고 성장하여 장년과 노년이 되며, 한편 이가 나고 수염이 자라고 백발이 되고, 또는 임신하고 낳고 기르는 것 그 밖의 여러 가지 자연의 작용은 그대의 생명이 계절에 따라서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이것도 역시 일종의 분해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하여도 무관심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으며 또 경멸하지 않고 다만 자연의 작용의 하나로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지각 있는 인간의 됨됨이에 어울리는 일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가 바로 죽으려고 할 때 다음 같이 생각하고 자위하면서 이 세상과 작별하라. 즉 자기는 이 세상에서 친구들을 위해 크게 노력하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 걱정하였지만 그들은 나의 죽음에 의해 다소의 이득을 바라고 있을 터이므로 나의 죽음을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생활에서 빨리 떠나도록 하자. 인간이 어찌 이런 곳에 언제까지나 애착을 느껴 머물러 있을 것인가 하고. 그러나 그 때문에 그들에게 불친절한 얼굴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대는 어디까지나 본래의 성격을 유지하여 친절하고 관대하고 온유한 태도를 취할 일이다. 할 수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평온한 죽음을 택할 때에 그 애통한 영혼이 육체에서 순조롭게 떠나는 때와 같이. 이 세상에서 그대의 하직은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연이 그대를 그 사람들과 결합시켜 교제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은 이제 그 결합을 절단하지만, 나는 억지로 떼어놓는데 대항하면서 떠나갈 것이 아니라, 다만 친척들과 헤어질 때와 같은 기분으로 작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자연에 따르는 여러 사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이 억울하고,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거나, 행여 남은 이들에 대한 기대와 원망, 그리움 등으로 번민한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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