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노년이다! / 신은경
[백세시대 금요칼럼]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노년이다! / 신은경
  • 신은경 차의과대학교수
  • 승인 2021.06.25 13:46
  • 호수 77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은경 차의과대학교수
신은경 차의과대학교수

얼마 전까지 부모님 질병 얘기

친구들에게서 듣곤 했는데

이젠 본인·남편 아프단 얘기 들려

어떤 병마에도 지배당하지 않고

담담하고 의연하게 살았으면

한 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쓴 같은 이름의 책 때문이다. 취업, 결혼, 성공, 인생 목표. 뭐 하나 분명하지 않은 청춘의 고민에 공감하는 멘토링으로 젊은이들의 공감을 샀다.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은 오늘날도 청춘의 고민은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은 것 같다. 

요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다시 입에 올랐다.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서 하는 얘기다. 처음 7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만 백신이 주어지고, 의료진 등 필수 요원들에게 백신이 배정됐을 때만 해도 백신 주사 후 반응이 그리 다양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후 65세 이상으로, 다시 60세 이상으로, 그리고 사람들 접촉이 많아 백신이 꼭 필요한 젊은 사람들까지 맞게 되자, 반응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처음 시니어들 사이엔 접종 후 딱히 아픈 곳도 없이 거뜬히 지나갔다는 것이 몸이 건강한 증거인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다 생리적 활동이 활발한 젊은이들이 접종 후 발열, 두통, 근육통 등을 호되게 앓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접종 후 반응으로 세대가 대별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젊을수록 백신 후 증상이 심하고, 노인들은 그리 큰 몸살 없이 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코로나 백신 후에 사용하는가 보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니까 노년이다’는 말은 진리처럼 다가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부모님들 얘기였다.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이 한두 분씩 편찮기 시작하고, 입원을 하고, 이후 치매를 겪으시고, 요양원에 가시고, 암 판정을 받으시고, 한 분 두 분 세상을 하직하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는 배우자와 본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혈압, 당뇨 정도는 누구나 한 가지쯤 가지고 있어 약을 상복하고 있고,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친구도 무릎이 혹은 허리가 속을 썩이고 있다. 귀에 이상이 생겨 어지럼증을 겪는 친구도, 심장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도 있다. 

최근 가족이 몇 가지 검사를 하느라 입원을 하게 되어 나는 병원에 며칠 동안 보호자로 있었다. 병원에 와 보면 온 세상이 아픈 사람 투성이다. 이 가운데서도 환자이지만 말도 잘하고 밥도 잘 먹는 사람부터 시작해, 걷기만 해도 뛸 듯이 기쁠 것 같은 사람, 밥만 먹게 되어도 소원이 없는 사람, 눈만 한 번 떠주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 등 상태가 여러 가지다. 이 땅에 나왔다 가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 병원이다.

고통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환자들과 간호하느라 지친 보호자들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병원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든 남이든 누군가 아픈 사람과 관계되어 있어 표정도 우울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한숨을 쉬었다.

병원에 오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인생에 겸손하게 된다. 왜 나만 이런 병이 걸렸는지 억울해할 것도 없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자만할 것도 없어진다. 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몸이 아픈 이 상황 또한 더 좋은 길로 가기 위한 행운의 다리일 수 있고, 쉼 없이 달리던 길에 잠시 쉬어가라는 브레이크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착하게 살았는데, 교회 다니는데, 불심이 깊은데 왜 병이 나고 고난을 받는지 물을 것도 없다. 어느 누구는 심성이 사악하고, 욕심 사나워 악한 일을 밥 먹듯 하는데, 왜 잘 먹고 잘 사느냐고,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불평할 일도 아니다.

저 세상 가는 길에는 세상의 명성도 재물도, 가져갈 주머니가 없다. 자연의 이치대로 땅에서 나왔으니 땅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가난한 자나 부자로 누리고 산 자나 높은 데서 보면 모두 짧은 인생이고 허무한 인생이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면 아픈 대로, 속 썩이면 속 썩는 대로 의연했으면 좋겠다. 어떤 병마나 상황의 변화에도 지배당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아프니까 노년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