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채 어르신의 황혼 재혼기 <4>
정희채 어르신의 황혼 재혼기 <4>
  • 관리자
  • 승인 2009.02.13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만남 ②

우리나라의 노년 인구가 500만, 인구 비율로 10%를 넘어섰다. 평균연령은 조만간 80대에 육박할 예정이다. 더 이상 과거의 나이에 대한 인식은 무의미해 졌다. 최근 들어 가장 큰 변화는 황혼재혼으로 대변되는 노년세대의 적극적인 반려자 찾기다. ‘열 효자보다 악처 하나가 낫다’라는 말은 인생에서 반려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본지는 신년 특별기획으로 정희채(78) 박혜숙(69)어르신의 사례를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정희채 어르신은 16년간의 재혼생활을 꼼꼼하게 육필로 눌러 써 내려왔다. 본지는 정 어르신의 소중한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해 독자여러분들께 성공적인 황혼재혼의 요소를 20회에 걸쳐 소개한다.


 

처음 참가해 회원들에게 기대이상으로 나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여러 친구들까지 사귀게 되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원장과의 면담에서는 나의 인적사항과 요망사항을 이야기하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하시라는 부탁을 드리고 모임을 마쳤다.


당시 나에게는 기원 사업도 중요했지만 일주일에 한번 찾아오는 원우회 모임은 결코 빠질 수 없었다. 남자친구며 여자친구도 많이 생겨서 외롭지 않았다. 특히 노래를 제법 했기에 나에게 시선이 많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여자 회원들이 말을 많이 걸어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은 겉모습을 보고 나오는 반응에 불과했다.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다보면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물러나곤 했다.

 

그 이유는 뻔했다. 내가 재산이 얼마 없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이곳에 나가면서 알게 됐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재혼조건으로 재산문제를 우선으로 삼는다. 그 다음이 인품이고 성격, 가족상황 순이다. 인간의 진실한 행복추구나 사랑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내가 생각하는 부부생활이란 재산만으로는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현실에 대해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몇 해가 지나면서 많은 여성들을 만나봤지만 내가 마음에 든다 싶으면 상대방이 물러서고, 내 마음에 어설프다 싶으면 상대방이 먼저 다가서는 넌센스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사람의 애간장을 빼놓았다. 언제나 그놈의 재산이 문제였다. 아파트가 있느냐 자가용은 있느냐 월수입은 얼마나 되느냐가 여자들의 요망사항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었다.


재혼의 대상으로 재산, 인품, 성격, 모두가 좋은 조건으로 갖춰진 사람이라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우리 인생살이의 현실이 그렇게 완벽하게 짜여 있지만은 않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였다.


모임에 나오는 회원 수가 몇 천 명이 넘었다. 또한 여기에서 맺어지는 재혼남녀가 몇 백 쌍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이곳을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18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봤다. 재혼을 간절히 바라고 바랬지만 이루지 못하고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사람을 볼 때, 동반자를 만난다는 사실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에는 나이가 예순이 넘은 노인이 재혼한다는 생각은 아예 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과부들이 종종 영감을 찾아가는 수도 있었지만 황혼재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생활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면서 황혼의 재혼도 자유로워 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땅한 동반자를 찾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재혼을 바라는 많은 독거노인들에게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다.


근래에 혼자 사는 여자 분들은 옛날과 달리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웬만한 홀아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노년에 이르러 재산이 있다 한들 속엣 이야기 하나 나눌 대상이 없다면 불행한 일이다. 따라서 그런 반려를 찾는 것이 황혼재혼의 의미일 텐데 황혼재혼의 모든 주안점은 오로지 재산에만 맞춰져 있다.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이 진실된가, 됨됨이는 어떤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내 재산을 축낼 위인은 아닌가 하는 것을 우선 따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습속 탓에 자식들에게 재산 다 물려 줘 버리고 외로운 처지가 되어버린 홀아비들로서는 감히 명함 한장 내밀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다소 민망한 얘기가 될 지도 모르지만, 재혼을 생각하는 당사자들은 속궁합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대부분의 노인들은 재혼을 하기 전에 속궁합을 먼저 맞춰 보고 이상 없이 가능하다면 재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요 관례로도 통한다. 이는 나이와 별반 상관이 없다. 나이가 고령일지라도 너끈히 성생활을 즐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임에도 성생활이 가능하지 않은 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을 나누고 사는 것이 황혼 재혼의 가장 큰 부분이지만, 몸 역시 마음의 반영이다. 따뜻한 살을 부비며 산다는 것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삶의 낙이기 때문이다. 늙어는 가지만 성생활이 우리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확실한 만큼 그것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만약에 서로 마음에 든다고 해서 재혼을 했는데, 성생활이 불가능해졌을 경우 또 다른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노인의 그것에 대해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모두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돼 있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애정표현이 필요한 것이다.


정리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