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노년, 그 씁쓸함에 대하여 / 엄을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노년, 그 씁쓸함에 대하여 / 엄을순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21.07.09 13:55
  • 호수 77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손 벌리는 40대 아들에게

돈 뺏기는 어느 모친 보니 씁쓸

노후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재산 물려주지 않는다고 

자식들에 선언이라도 해야 하나

올해는 감자 농사가 풍년인가 보다. 앞집, 뒷집, 옆집에서 연달아 한 상자씩 나눠줘서 세 상자나 생겼다. 토실토실한 게 참 맛있게도 생겼다. 둘이 얼마나 먹는다고 저걸 다 뭐하나. 차 타고 오며 가며 매일 바라보던 감자밭이었기에 보관 잘못해서 썩게 만들 수도 없고. 

그렇지. 용문산 끄트머리에 그림같이 멋진 집을 지어 살고있는 친구가 있다. 얼마 전 뒤늦게 할머니가 되었다고 했는데 감자 상자 들고 친구 얼굴이나 보러 가야겠다. 코로나 이후 처음 보는 거다. 

그런데 사십 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친구 집 문 앞에서 초조한 듯 서성이고 있는 한 남자. 친구 손자를 돌봐주시는 입주 산후도우미의 아들이란다. 칠순은 다 된 것 같은 도우미 할머니. 그 할머니에게서 용돈인지 생활비인지를 받아가는 중이었다는데. 

“넉 달 사이에 벌써 이번이 세 번째야. 무슨 포주도 아니고, 걸인이 한푼 두푼 모은 돈 걷어가는 깡패 같아. 좀 심하게 말하자면 말이야.” 도우미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죽겠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요즘 너도나도 다 쓰는 계좌이체 방법을 마다하고 수고비를 일주일에 한 번씩 현금으로 달라 하기에 좀 이상하긴 했단다. 참 ‘올드’하단 생각은 했지만, 힘들게 번 돈을 저렇게 아들에게 상납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데. 

“밤잠 설치며 일해서 모은 돈을 왜 자식에게 몽땅 빼앗기냐 물었더니, 늦게 낳은 하나뿐인 저 아들놈이 주식에 돈 홀라당 날리고 부인한테 쫓겨나게 생겼다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고, 돈 내어놓으라고 두들겨 패는 자식도 많다는데 그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우시는데 나도 할 말이 없더라. 난 자식들에게 돈 안 남겨줄 거야. 남겨주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싸우더라.”

친구는 모르는 사람이 드나드는 게 기분은 썩 안 좋지만, 도우미 할머니가 불쌍해서 아무말 하지도 못했단다. 글쎄다. 내 딸이 주식으로 돈 다 날리고 이혼당할 처지라 하면 과연 내가 외면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부는 양쪽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도 별로 없다. 애초부터 기댈 곳이 없었기에 우리가 씩씩하게 잘 살았듯이, 우리 자식들도 씩씩하게 잘 살 게다.

문제는 돈 있는 부모를 둔 자식들이다. ‘있는 돈 나 좀 도와주지. 이번 주식 금방 오르면 두 배로 갚을 수 있는데’, ‘난 맏아들인데 재산을 훨씬 더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요즘 아들, 딸 차별이 어딨어. 난 적게 받았으니 뭐 효도할 필요 있나.’

아무리 공정하게 재산을 물려준다 해도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 물론 내가 절약해서 재산 남겨준 덕에 자식들이 풍족하게 잘 살면 그보다 좋은 건 없다. 

하지만 부모님 돈을 물려받을 마음에,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는 그 자식들이 문제다. 

‘유산 받아서 유흥 빚 갚으려고 아버지를 끔찍하게 살해한 100억대 자산가 집안의 장남 박모씨’, ‘사기 및 돌려막기 빚 갚으려고 아버지를 둔기로 내리쳤으나 다행히도 미수에 그쳐 버린 존속살해 미수범 A모씨’, ‘장남 대우 해주지 않는다고 무차별 폭행, 감금, 심지어는 불태워 살해하려 한 B씨.’

그렇다면 미리미리 재산을 물려준 다음에 남은 생은 자식에게 기대어 살면 어떨까. 받을 땐 좋았지만 나중에 돈도 없는 부모가 짐 같아서 이리저리 뒷방으로 굴리다가 허름한 요양원으로 보내버린다면?

글쎄다. 이런 자식들이 어디 많지는 않겠지만. 사회에 기증을 하거나 다 쓰거나 해서 만약에 자식들에게 아예 남겨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기대할 유산이 없다면 제 손으로 벌어먹고 살 힘이 생기지 않을라나.

‘우리가 더 늙어져서 거동까지 불편하게 됐을 때, 너희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요즘 백세시대라는데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고. 나이 들어가며 점점 더 의료비니 뭐니 돈도 많이 들어갈 터이고. 하지만 우리 노후는 우리가 알아서 다 할게.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아라.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많지도 않은 남은 돈 아껴서 잘 쓰며 지낼게. 다른 집처럼 재산을 남겨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모든 게 다 너희들에게 부담을 덜어 주려는 것이다. 섭섭해하지 말아라.’ 

날 잡아 딸 둘 앉혀놓고 이런 선언이라도 해야겠다. 돈 안 준다고 때리고, 나만 적게 줬다고 폭행하고, 더 달라고 두들겨 패고, 다 주고 나면 힘없는 뒷방 늙은이 되고. 참으로 씁쓸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