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조선 사대부의 솔직한 감정
[백세시대 / 세상읽기] 조선 사대부의 솔직한 감정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7.23 14:02
  • 호수 78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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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일부일처제였으나 부유하고 권력을 가졌던 이들은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첩을 두었다. 단지 집안의 혈통을 잇는다는 명분 하나로 ‘용인 받은 불륜’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가 아들의 첩까지 챙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라감사를 세 번이나 지낸 원두표(1571~1645)는 전라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전북 부안 줄포에 사는 세도가 김홍원에게 아들의 첩을 구해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보냈다. 

“드릴 말씀은 저희 큰아이가 혼인한 지 4년이 되었는데 아직 태기가 없습니다. 또 며느리가 심한 배앓이를 해서 귀여운 손자를 얻을 것이라는 온 집안의 희망이 이제는 끊겼습니다. 그래서 좋은 집안의 피를 이은 여자를 구한 지 오래 되었으나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소문으로 듣건대 김 안주목사에게 서녀가 있다고 하던데 만일 그녀를 얻어서 아들을 낳게 된다면 반드시 절의(節義) 높은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감께서 좋은 말로 한 번 주선해 주실 수 있을런지요? 만일 이 일이 절박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감히 영감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부디 소홀히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라건대 영감님께서 그 댁에 한 차례 왕림해주십시오. 경진년(1640) 8월 10일, 원두표가 머리를 조아리고 아룁니다.”

김홍원은 여러 곳에 집과 정자를 소유한 부자로 진사와 문과 초시에 합격한 문인이다. 김준 안주목사는 고려 명장인 김취려의 후손으로 교동현감을 역임하고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의주부윤에 임명됐다. 원두표는 김준과 일면식이 없었다. 김홍원과 김준이 친한 사이인 것을 알고 이 같은 사적인 부탁을 한 것이다. 원두표의 바람이 성사됐는지는 이후 편지가 발견되지 않아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사대부는 공무 중 병든 아내와의 사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김홍원의 아들 김명열(1613~1672년)은 성균관 전적, 예조와 형조 및 공조의 좌랑과 정랑 등을 역임했다. 

조선시대 수령들은 가족들을 임지로 데려가 살 수 있었다. 김명열이 황해도 평산부사로 임명될 당시, 오랫동안 투병하던 아내 전주 이씨를 데리고 갔다. 평산 적암면에 역대 왕들이 찾아가 치료와 휴식을 했던 유명한 온천이 있어서다. 평산은 또 조선과 중국의 사신들이 왕래하는 길목이었다. 김명열은 사신을 접대하는 중차대한 일을 맡았으나 아내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 볼 것이 걱정돼 금교찰방(종6품) 이일삼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다. 당시 사신들은 의전과 접대가 소홀하다는 이유로 계파 즉, 장계를 올려 파직을 요청하기도 했다. 

“행차 중에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아내의 병환이 이미 막바지에 이르러 실낱같은 목숨이 거의 다했지만 아직 끊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즉시 출발해 사행 맞이할 준비를 할 계획이었는데 방금 기절해서 다시 출발을 멈추고 사망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밤이 되도록 죽지 않는다면 내일 새벽에 본부로 돌아가려고 합니다만, 혹시 사행이 도착하기 전에 이르지 못할까봐 염려되어 들어가지 못한 사연을 사행에 급히 보고했습니다. 이곳의 상황을 그대께서도 자세히 아실 것이니 사행에 전해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파직을 당하더라도 불쌍히 여길 일은 아니지만 이때에 만일 계파를 당하는 조처가 있게 된다면 더욱 큰 낭패이니 그대께서 좋은 말로 주선해주시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무신년(1668), 10월 5일, 명열이 머리를 조아리고 아룁니다.”

유교적 소양을 중시하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개인적인 감정을 통제나 억압 또는 절제의 대상으로만 여겼을 것이라는 선입견은 이들의 편지로 봐서는 편견일 듯하다. 그들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 글은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전경목·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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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7-24 08:32:43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윤진한 2021-07-24 08:32:07
(天).공자님과 맞지는 않습니다. 불교는 원래부터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부처가 새로 만든 후발신앙으로 브라만을 섬겨온 인도에서도 다시 배척받게 된 인도발 신앙입니다. 창조신보다 높다는 Chimpanzee류의 부처를 받드는 무신론적 Monkey철학임을 염두에 두고, 불교와 섞인 후대의 중국 도교도 그런 위험을 가지고 있는 철학임을 염두에 두고 철학.민속적으로만 접근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윤진한 2021-07-24 08:31:28
세계사로 볼 때, 유교는 공자님도 제사하며, 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성립된 세계종교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이전부터 전해지던 신앙인 始原유교의 天(하늘,하느님)숭배, 여러 神明숭배를 계승하시면서, 인간이 행해야 할 禮와 道를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가르치신 스승(先師,至聖先師)이시자, 성인임금(文宣帝,文宣王)으로 추증되신 성인이십니다. 그래서 유학은 聖學이라고도 합니다.

​하느님의 종교인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의 정체성을 확실히하고, 하느님과 별개의 철학인 도교,불교를 이해하는것도 어느정도 필요합니다.도교는 유교처럼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天生蒸民)하신 점에 주안을 두지 않고, 후대에 갈수록 불교의 보살같은 용어도 사용하여,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수천년 이어진 유교의 하느님(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