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노인을 우롱하는가
정부는 노인을 우롱하는가
  • 오건호
  • 승인 2009.02.23 14:41
  • 호수 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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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기초노령연금법은 부칙 제4조 2항에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 월평균소득(약 150만원)의 10%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지급하고, 소요재원과 연금액 상향조정 시기, 방법 등을 논의하기 위해 2008년 1월부터 국회에 연금제도개선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은 각각 총선과 대선 직전 월 20만~3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지만 현재 이렇다 할 언급조차 없다. 이에 대해 상세히 언급한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사진) 연구실장의 제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註)

2004년 17대 국회가 개원하자 한나라당은 주위를 놀라게 하는 노인정책을 발표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월 3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며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표 1>에서 보듯,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안은 우선 2006년에 9% 급여율로 시작하고, 이후 매년 0.5%씩 인상해 2028년에 20%에 도달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연금의 급여율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약 150만원)을 기준으로 계산되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2006년엔 14만원이고, 2028년에 30만원에 이르게 된다.

당시 이 제안이 파격적이었던 이유는 소요재정 때문이었다. 월 3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요구됐다. 당장 도입 첫해에 8조원, 노인수가 크게 늘어나는 2030년에 약 91조원(GDP 5.5%)이 필요했다(2006년 불변가격).

부유세를 도입해 국가재정을 대폭 늘리자는 민주노동당이라면 모를까, 감세를 주장하며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한나라당이, 그것도 민주노동당안(15% 급여율) 보다 더 높은 기초연금을 꺼내놓았기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한나라당이 기초연금에서 과감한 행보를 보인 이유는 2002년 대선의 뼈아픈 기억 때문이다. 당시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노후 의제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TV토론에서 이회창 후보가 ‘미래 재정을 감안해서 급여를 깎을 수밖에 없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노무현 후보가 이를 놓치지 않고 ‘용돈연금’ 비판을 꺼내들며 이회창 후보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한나라당은 졸지에 불효정당이 돼야 했다(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 당선 이후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연금 급여 인하를 국정 핵심과제로 추진했다).
이에 한나라당이 다음 대선을 준비하며 공을 들인 대상이 노인이었다. 한나라당은 2004년 17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내부에 연금TFT를 꾸리고 기초연금방안을 모색했고, 마침내 12월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노후 의제를 선점하려는 전략적 행보가 돋보였다.

2007년 빅딜국회 : 사립학교법 개정 위해 기초연금 반토막 내
멋진 기초연금을 제안한 한나라당이었지만 내부에는 드러내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다. 재원마련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경제계의 비판에 부딪혀 철회되면서 ‘재원방안’ 없는 기초연금이 생겨난 것이다. 한나라당은 기초연금 도입과 세금 감면을 동시에 주장하는 이상한 정당이 돼 버렸다.

이때부터 한나라당의 ‘노인 우롱사(史)’가 시작된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은 경로당에 전달하는 선물로는 최상이었으나 공론의 장에서는 결정적 결함을 지닌 상품이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노인문제를 강조할 때면 기초연금을 꺼내놓지만 실제 법안심의나 정책논의 과정에서는 이를 뒷전으로 미루는 한나라당의 ‘이중활동’이 펼쳐진다.

첫 번째 우롱은 2007년 7월 이뤄졌다. 당시 한나라당은 사학 재단의 이사회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자 했고, 열린우리당은 오랫동안 끌어왔던 국민연금법 개정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빅딜이 이뤄졌다.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을 얻는 대신 국민연금의 급여 인하를 용인하고, 기초연금의 급여율 목표를 애초 20%에서 10%로 절반 낮췄다. 사학재단의 지지도 얻어내면서 재원 없는 기초연금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일석이조의 행보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인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 결과 지금의 ‘기초노령연금’이 탄생했다(법안명에 따라 기초노령연금으로 용어 정리). 도입 첫해인 2008년에 전체 노인의 60%에게 급여율 5%의 연금(월 8만4000원)을 지급하고, 장차 20년 후인 2028년 10%에 도달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한나라당의 기초노령연금은 한나라당 자신에 의해 절반으로 반토막 나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당선 석 달 만에 공약 뒤집어
2007년 대선을 맞아 이명박 후보가 다시 기초노령연금을 상품으로 꺼내들었다. 열린우리당과 합작해 기초노령연금을 훼손한 지 다섯 달 만에 노인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대선 투표일을 며칠 남긴 12월 10일, 이명박 후보는 대한노인회가 주관한 후보토론회에서 “어르신들에게 버스비를 주다가 안주는 것은 잘못이며, 오히려 다른 것도 드려야 한다”며 “예산을 절감하면 (교통수당) 1만5000~2만 원은 부담이 안되며 기초노령연금도 20만원까지 드릴 수 있다”고 약속했다. 이듬해에 8만4000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노인들에겐 기초노령연금액이 2배 이상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게 하는 말이다.

이 공약은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발표했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경선과정에서 박 후보는 임기 5년 안에 기초연금을 20만원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당시 이 후보는 기초연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으나, 대선투표일이 다가오자 노인 표를 의식해 박 후보의 제안을 수용해 기초연금 공약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공약은 대통령 당선과 함께 사라졌다. 대통령인수위위원회는 3월 국정방향을 확정한 인수위 백서를 발간했다. 여기서 평생복지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연금제도를 재구조화하겠다는 제안을 볼 수는 있지만, 석 달 전에 이 후보가 약속했던 기초노령연금의 급여율 인상은 찾아볼 수 없다. 인수위원회는 “대선공약에서 약속된 기초노령연금의 급여수준과 대상범위도 정부 재정소요 등을 고려해 실현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며 재원 조달을 이유로 사실상 기초노령연금 20만원안을 폐기했다(17대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08: 136). 노인들 앞에 서서 ‘어르신’을 연발하며 약속한 공약이 불과 석 달 만에 사라진 것이다.

2008˙009년 이명박 정부 : 기초노령연금법 위반하며 급여율 상향 무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기초노령연금 말 뒤집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급여율 상향 작업을 명시한 기초노령연금법 마저 무시하고 있다. 사실상 위법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7월 사립학교법과 연금법 빅딜과정을 되돌아보자. 당시 사립학교법 개정을 조건으로 국민연금법과 기초노령연금법이 개정됐다. <표 2>에서 보듯, 핵심내용은 국민연금 급여율을 향후 20년 동안 60%에서 40%로 낮추고 대신 연금 축소분을 보전하는 의미에서 기초노령연금은 같은 기간에 5%에서 10%로 인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 연금의 인하와 인상방식이 다소 다르게 결정됐다.

국민연금 급여율은 2007년까지 60%였던 것이 이듬해인 2008년에 50%로 낮아진다. 이어 2009년부터 매년 0.5%씩 인하돼 2018년에 45%가 되고 2028년에는 40%에 도달한다. 단계별 인하 방식이 법에 명시된 것이다.
반면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총론만 정하고, 그 구체적 상향시기와 방법은 2008년 1월부터 국회에 설치될 ‘연금제도개선을 위한 위원회’에서 정하기로 했다(기초노령연금법 부칙 제4조의2). 국민연금 인하는 ‘현금’처럼 바로 이루어진 반면 기초노령연금 인상은 의심쩍은 ‘어음’으로 처리된 셈이다.

그러나 기초노령연금법에 명시된 연금개선위원회가 2008년 1월부터 설치, 운영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모른 체 하고, 18대 총선에서 국회를 장악한 한나라당 역시 이것을 잊어버린 체 한다. 그 결과 국민연금 급여율은 지난해에 50%로 인하되고, 올해 49.5%로 낮아지지만, 기초노령연금액은 인상되지 못하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5%로 머물러 있다.

기초노령연금 강화를 위한 제언
기초노령연금은 도입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고, 아직 금액이 충분치 않지만 미래 노인복지를 담당할 중추적 기둥임에 틀림이 없다. 올해는 전체 노인의 70%로 지급 대상도 확대되어 수급자수가 지난해 288만명에서 올해 334만명으로 46만명 늘어난다. 이명박 정부가 마치 자신의 성과인양 자랑하지만, 2007년 기초노령연급법 개정에서 지급대상이 2008년 노인의 60%, 2009년 노인의 70%로 정해진 것에 따른 것이다.


<표 3>를 보면, 올해 기초노령연금에 소요되는 재정이 3조4000억원으로 적은 금액이 아니다. 향후 노인인구가 크게 늘어날 예정이어서 기초노령연금이 갖는 영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것이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소중하게 키워야할 제도이다. 노인복지를 위한 연금개혁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이번 2월 국회에서 무엇보다 시급히 연금개혁위원회가 설치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법이 명시한대로 국회에 연금개선위원회를 설치해 법을 준수해야 하며, 이 기구에서 조속히 기초노령연금 상향방식을 정해야 한다.

둘째, 기초노령연금의 법정급여율 목표가 최소 15%는 돼야 한다. 2028년 목표급여율을 15%(월 25만원)로 상향하면, 매년 0.5%씩 인상하는 방식이 법에 명시돼야 할 것이다. 노인의 80%에게 지급될 경우, 15% 급여율을 유지하기 필요한 재정은 2030년에 51조원이다(GDP 2.9%, 2006년 불변가격).

지금 기준으로 보면 천문학적 금액이지만 한국사회가 2026년에 인구 20%가 노인인 초고령사회 진입하는 상황에서 연금 지출은 보편적 복지로 받아들여야 한다(통계청 2009). 향후 GDP 절대 규모도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GDP 3% 수준의 기초노령연금 지출은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셋째, 저소득계층 노인을 위한 노후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 저소득계층은 연금보험료를 내지 못해 노후에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예정이다. 이들을 국민연금 제도에 포괄하기 위해서는 연금보험료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향후 2028년에 국민연금 급여율이 40%로 낮아지는 대신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을 15%까지 올리고 저소득계층을 보험료 지원을 통해 국민연금 틀 안으로 포괄해, 다수 노인들이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동시에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오건호, 2008).

노인소득보장은 초고령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사회가 해결해야할 시대적 과제다. 이 중요한 의제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선거용 사이비 공약, 서민을 현혹하는 이벤트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노인들이 정치적 주체로 나서는 연금주권운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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