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 섬망증
[전문의 칼럼] 섬망증
  • 이동현
  • 승인 2009.02.23 16:02
  • 호수 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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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북부노인전문병원 정신과 과장
▲ 이동현 북부노인전문병원 정신과 과장

얼마 전 뇌혈관 수술을 받은 김모(72세) 어르신은 늦은 밤 갑자기 일어나 현관문을 붙잡고 바르르 떨었다.

이어 현관문에 불이 켜지자 “불이야”라고 외쳤다. 이 소리에 놀란 아들이 김 어르신의 방에 찾아가자 되려 “당신 누구야?”라고 물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김 어르신 가족은 벌써 며칠째 이렇게 밤잠을 설치고 있다.

김 어르신의 사례처럼 고령에 대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수술 후 신체리듬이 깨지고 환경이 급변해 갑작스런 의식장애와 혼동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섬망은 입원치료를 받은 70세 이상 노인환자의 30%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퇴원 후 평소와 달리 주의가 산만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느낀다. 또한 자신이 처한 시간과 장소를 거의 깨닫지 못해 멍한 상태로 하늘을 쳐다보거나 소리를 치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일경우 ‘섬망’을 의심할 수 있다.

섬망 증세가 나타나면 집중력과 지각력에 장애가 나타나 기억장애, 착각, 환각, 해석 착오, 불면증이나 악몽, 가위눌림 현상 등을 보일 수 있다.

또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안절부절하거나 과잉행동을 하다가도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있기도 하며, 보통 사람보다 공포를 훨씬 많이 느끼거나 슬픈 일에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섬망의 원인은 그 증세만큼 다양하다. 섬망이 발생되는 경우는 ▶전신에 병균이 감염됐을 때 ▶뇌에 산소공급이 잘 안될 때 ▶혈액에 당분이 모자랄 때 ▶간장이나 신장에 질환이 있을 때 ▶뇌세포의 각종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필수 비타민인 티아민이 부족할 경우 등이다.

약물에 중독됐거나 금단현상이 나타날 때 순간적인 정신착란이 일어나는 것도 섬망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증상은 치매와 비슷해 보이지만 치매와 달리 급성으로 발병하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한, 치매의 경우 뇌세포의 이상으로 나타난다. 혼동, 섬망 등 의식 장애가 없는 환자가 기억장애, 언어장애, 시공간능력 저하, 성격 및 감정의 변화, 그 밖의 추상적 사고장애, 계산력 저하 등 적어도 2가지 이상의 뇌 기능이 골고루 침범된 장애를 갖고 있다. 치매는 이런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주로 후천적으로 발생하고, 점차 진행하는 2종류 이상의 인지기능의 장애가 의식저하 없이 일어나며 증상이 서서히 나타난다는 점에서 섬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섬망은 치매와 구분되지만 방치하면 치매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유발요인만 적절히 치료하면 1~2주내에 완치가 가능하다. 반면 치료시기를 놓쳐 치매가 동반된 경우나 뇌의 기질적 이상을 동반한 경우 섬망은 오랜 기간 지속되며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섬망의 치료는 일상생활의 리듬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섬망으로 판단되면 일단 유발요인 제거를 위한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며 일상생활 주기, 수면주기를 조절하고 환경을 적절히 조절해 줘야 한다.

병실에서는 주변 환경을 잘 정리정돈하고, 집에서 쓰던 낯익은 물건 한 두 가지를 환자 주변에 갖다 두어 정서적인 안정을 꾀한다. 친근한 신체접촉이나 환경변화만으로 증상이 호전되기도 한다.

가까운 가족을 자주 방문하게 하고 이들과 잦은 신체 접촉 및 대화를 하도록 교육한다.
낮 동안에는 병실을 환하게 유지해 주고 달력과 시계를 눈에 잘 띄게 두는 것이 좋다.

또한 여러 가족이 웅성거리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방문을 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밤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물품은 치워두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환자와 친밀한 가족 1, 2명이 간병을 맡아 환자에게 일관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정상인에게는 저절로 파악될 수 있는 주변의 환경들이 섬망 환자에게는 파악되지 않고 불안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환자에게 시간, 장소, 신체장애 등에 관해 간단명료하게 여러 번 가르쳐 주는 것도 조기 치료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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