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 등 원작의 감동 선사한 ‘이건희 컬렉션’
인왕제색도 등 원작의 감동 선사한 ‘이건희 컬렉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8.13 16:04
  • 호수 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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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측이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중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개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은 관람객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를 감상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삼성측이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중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개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은 관람객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를 감상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앙박물관  삼성가 기증한 2만여점 중 국보급 문화재 77점 엄선해 명품전

현대미술관  이중섭의 ‘황소’,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등 근현대미술 명작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 1759). 그는 75세인 1751년 5월, 현재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에서 바라본 비에 젖은 인왕산의 인상을 남긴다. 이렇게 탄생한 ‘인왕제색도’는 대담한 필치, 섬세한 붓질로 비에 젖은 바위와 나무를 사실감 있게 그린 한국화의 걸작으로 국보 제216호로 지정됐다. 그간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해 쉽게 보기 어려웠지만 지난 4월 이 작품을 비롯한 2만여점이 넘는 ‘이건희 컬렉션’이 국가에 기증되면서 대중들에게 가까워지게 됐다. 그리고 지난 7월 21일 ‘인왕제색도’ 등 이건희 컬렉션 일부가 공개됐다. 코로나 여파로 한정된 인원만 관람할 수 있음에도 한 달도 안 돼 2만명이 다녀가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동시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하 ‘명품전’)을 9월 26일까지 열고, 국립현대미술관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이하 ‘명작전’)을 내년 3월 13일까지 진행한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의 ‘명품전’에서는 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국보·보물급 문화재 77점을 소개한다. 이중 인왕제색도와 함께 큰 관심을 받는 작품이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추성부도’다. 11세기에 활동한 중국 문인 구양수가 지은 문학 작품 ‘추성부’(秋聲賦)의 쓸쓸한 정서를 담은 작품으로 당시 환갑을 맞은 김홍도가 성큼 다가온 죽음과 마주한 감정을 표현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토기로 산화철을 발라 붉은 광택이 아름다운 ‘붉은 간토기’, 삼국시대 금세공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쌍용무늬 칼 손잡이 장식’(보물 제776호) 등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잘 보여준다. 

삼국시대 토우, 금동불도 눈길

이와 함께 4~5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토우 장식 그릇받침’도 눈길을 끈다. 토우는 흙으로 빚은 사람이나 동물 형상을 뜻하는데, 이 토기에는 말 탄 사람과 토끼, 뱀, 개구리 등 동물 토우 등이 달렸다. 이중 뱀에게서 도망치려고 폴짝 뛰는 개구리의 익살스러운 모습은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또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위한 노력과 결실을 보여주는 ‘석보상절(釋譜詳節) 권11’(보물 제523-3호)과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1·12’(보물 제935호),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7·18’도 전시에 나왔다. 이를 통해 15세기 우리말과 훈민정음 표기법,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금동불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일광삼존상’(국보 제134호),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고려 사경(寫經)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현존하는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명작전’에서는 20세기 초중반 한국미술 대표작가 34명의 주요 작품 58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유영국, 권진규, 천경자 등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중 김환기(1913~1974)의 ‘여인들과 항아리’를 눈여겨볼 만하다. 6m에 육박하는 대작으로 김환기가 본격적으로 추상화를 그리기 전 작품이다. 파스텔톤을 배경으로 항아리를 이거나 안은 반라의 여인들, 백자 항아리와 학, 사슴, 새장 등 작가가 즐겨 그린 소재들이 등장한다. 

이중섭(1916~1956)의 ‘황소’와 ‘흰 소’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알려졌다시피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그림 소재로 소를 좋아했는데, 광복 후에는 이를 더 적극적으로 그렸다. 소는 인내와 끈기를 상징하는 한국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황소’는 강렬한 붉은색을 배경으로 주름 가득한 황소가 절규하듯 입을 벌리고 눈에 힘을 주고 있다. 전신을 드러낸 ‘흰 소’는 등을 심하게 구부리고 고개를 푹 숙인 지친 듯한 모습이지만, 힘을 짜내 필사적으로 전진하려는 야성미가 느껴진다.

이중섭의 스승 백남순 작품도 선봬

이중섭의 스승인 백남순(1904~1994)의 ‘낙원’도 처음 공개된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한 백남순은 1931년에 귀국, 오산학교에서 이중섭을 가르쳤다. 한국전쟁 중 남편과 사별하는 불행을 겪었고 이후 1964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뉴욕에서 생을 마쳤다. 친구의 결혼 선물로 제작한 ‘낙원’은 동양의 ‘무릉도원’과 서양의 무릉도원격인 ‘아르카디아’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현실에 없을 것 같은 높은 산이 펼쳐져 있고 바다, 강, 계곡이 곳곳에 넘실거리는 가운데 그 속에서 인간들이 평온하게 사는 삶을 담고 있다. 특히 유성물감으로 동양의 산수화를 그린 듯한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전후 복구 시기에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모색하며 한국미술을 보다 다채롭게 만든 작가들의 작품도 소개한다. 이성자, 남관, 이응노, 권옥연, 김흥수, 문신, 박생광, 천경자 등이다. 천경자가 자신의 큰 며느리를 모델로 그린 ‘노오란 산책길’, 민속적이고 원색적인 색감이 다채로운 박생광의 ‘무녀’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사전예약제로만 운영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회차당 30명씩 1시간 관람이 가능하며, 매일(월요일 휴관) 총 8회차(수·토요일은 총 11회차)를 운영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회차당 20명씩 30분 간격으로, 매일 총 15회차가 진행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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