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여름이면 생각나는 노래 한 곡 / 이동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여름이면 생각나는 노래 한 곡 / 이동순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21.08.20 14:38
  • 호수 7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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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미군 기지였던 부산항 제2부두는

미국 뜻하는 ‘메리켕’ 항구라 불러

고봉산의 ‘아메리카 마도로스’는

부산항이 겪은 굴곡과 애환

풍유적으로 담아낸 노래

입추와 말복이 지났지만 폭염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지구촌의 현황이 과거와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옛 선인들의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입추가 지났으니 이제 가을도 멀지 않다는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느닷없는 괴질로 전국이 황폐의 계절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침잠 속에서 축적한 생기를 모아 파천황(破天荒)의 새로운 변곡점을 마련해야 한다. 해마다 여름이면 가장 많이 찾던 곳이 부산항이었다. 송도, 광안리, 해운대는 단골 방문지였고, 피서객들로 들끓었다. 오늘은 그 시절 부산 이야기와 추억의 실루엣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부산항의 첫 관문은 제1부두이다. 19세기 후반 개항이 되면서 소박한 어촌마을이 지금처럼 크고 웅장한 국제무역항 위용으로 바뀌었다. 특히 6·25전쟁 중 임시수도가 되었던 부산항은 북에서 피란 내려온 동포들의 종착지였고, 미국을 통해 들어온 각종 구호원조물자의 하역지이면서 동시에 많은 서민들의 처연한 노동현장이기도 했다. 

8·15 이후 부산항에서 서슬 퍼런 기세로 감시의 두 눈을 번뜩이며 호령하던 일본은 떠나갔지만 바로 뒤이어 미군이 들어와 부산항을 통제하고 관리했다. 미군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패전국 국민들의 귀환을 정리 안내하는 한편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환동포들도 관리 통제했다. 

흥남부두에서 미군화물수송선을 타고 부산항에 입항한 피란민들이 내리자마자 하얀 DDT가루를 뒤집어쓴 곳도 부산항이다. 휴전 이후 부산항 제1, 제2부두에는 엄청난 분량의 옥수수, 밀가루 등의 곡물을 실은 미국 화물선이 연이어 입항했다. 이른바 전쟁구호물자란 이름으로 들어온 물품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부두를 거니는 화물선을 타고 온 미국선원과 미군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각종 군수품, 밀수로 들어온 물건들이 유입되어 국제시장 진열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부산항 제1부두가 주로 병사들의 수송을 담당했다면 제2부두는 전쟁물자, 군 장비의 보급 및 수송을 담당하는 후방군수기지로서의 역할을 도맡았다. 전쟁 시기 제2부두는 미군에 징발됐고, 이곳을 통해 미군들의 각종 보급품, 군수품을 최전방으로 운송했으니 그야말로 최적의 병참기지였던 것이다. 

지금도 당시의 기록사진을 찾아보면 바다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에서 군수품으로 보이는 엄청난 분량의 화물이 부두에 산더미처럼 적재되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철 테이프로 두 개씩 동여맨 직사각형 나무상자가 산만하게 마구 쏟아놓다시피 쌓인 장면이 있고, 그 사이를 얼굴이 햇볕에 타서 새까만 한국인 부두노동자들이 두 사람씩 상자를 맞쥐고 나르는 모습도 보인다. 높이 쌓인 상자의 높이가 부두 야적장 처마 끝까지 닿아있는 듯하다. 그 뒤로는 장총을 어깨에 멘 미군병사가 현장을 지키고 있다.   

미국을 한자말로 ‘미리견’(彌利堅)이라 일컫는데, 아메리카를 음역한 것으로 보이는 이 용어는 일찍이 조선왕조 후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도 이미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근대 일본에서도 미국을 ‘메리켕’(米利堅)으로 불렀던 기록이 있다. ‘미리견’을 ‘메리켕’이라 부르는 것은 일본식 발음이다. 

이러한 식민지 시절의 관습이 그대로 남아서 해방 후 미국 화물선이 입항하던 부산항을 ‘메리켕 부두’라고 불렀다. 대중가요 제목에서 우리는 ‘메리켕’ 관습의 변천사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메리켕 항구’(박영호 작사, 무적인 작곡, 채규엽, 1939), ‘눈물의 메리켕’(조명암 작사, 송희선 작곡, 남인수 노래, 1939), ‘메리켕 부두’(월견초 작사, 김부해 작곡, 윤일로 노래, 1965) 등이 그 사례들이다. 

이를 통해 보면 미국 화물선이 드나드는 항구를 흔히 ‘메리켕 항구’로 불렀던 듯하다. 전쟁 시기 미국 화물선이 싣고 온 밀가루를 ‘메리켕 가루’라고 불렀던 것도 알고 보면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고봉산의 노래 ‘아메리카 마도로스’(김진경 작사, 고봉산 작곡, 고봉산 노래)의 노랫말 전체의 음영이 발산하는 분위기도 ‘메리켕 항구’의 또 다른 전언(傳言)이라 할 수 있다. 

무역선 오고가는 부산항구 제2부두/ 죄 많은 마도로스 이별이 야속터라/ 닻줄을 감으면은 기적이 울고/ 뱃머리 돌리면은 사랑이 운다/ 아  항구의 아가씨/ 울리고 떠나가는 버리고 떠나가는/ 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    

‘아메리카 마도로스’1절

미국 화물선을 타고 온 마도로스, 즉 선원들은 부산항에 입항한 뒤 용무를 마치고 다시 되돌아가기까지 부산의 밤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노래 속에서 1960년대 당시 밤거리 문화의 일단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이 노래는 부산항이 겪어온 역사적 굴곡과 애환을 풍유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해석이 된다. 

‘용두산 엘레지’로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고봉산 창법이 ‘아메리카 마도로스’에 이르러 한결 부드럽고 은근하고 매끄럽게 넘어가는 감칠맛 나는 창법으로 빠져들게 한다. 다른 어느 누구가 불러도 고봉산 창법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노래 가사 하나에도 이처럼 음미하다보면 뜻밖의 역사적 숨결이 젖어있음을 알게 된다. 옛 사람들이 남긴 모든 것은 이처럼 다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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