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초등학생들의 눈물 젖은 졸업식
할머니 초등학생들의 눈물 젖은 졸업식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2.27 17:07
  • 호수 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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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 여성 배움터’ 양원초등학교 234명 빛나는 졸업장

▲ 2월 2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때 학교를 다니지 못한 어르신들이 다니는 양원초등학교의 1회 졸업식이 거행됐다.

2월 25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배움의 때를 놓친 중고령 여성들에게 만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최초의 성인대상 초등학력 인정 학교인 양원초등학교의 첫 졸업식이 열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234명의 졸업생 사이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졸업식에 참석한 전순이(68)씨는 오늘 졸업식이 꿈만 같다.

지난해 5월 ‘난소물혹’ 판정을 받은 뒤 ‘죽음’까지 생각했던 터라 더욱 의미가 큰 자리다. 전씨는 투병생활로 인해 많이 야위었지만 졸업장을 손에 쥐는 순간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2년 전 허리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애꿎은 허리 통증 약만 지어줬다. 약을 아무리 잘 챙겨 먹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통의 나날을 보냈지만 학교는 단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한을 풀라며 딸이 소개해 들어간 학교다. 진통제를 벗삼아 학교에 다녔다. 결국 지난해 초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 난소물혹 수술을 받았다.

▲ 총 234명의 졸업생들은 졸업생 대표가 전별사를 낭독하자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그의 향학열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수술 후 정신을 차리니 간호사가 “할머니 학교 다니세요? 무의식 상태에서도 계속 학교가야 한다며 선생님을 찾던데요”라고 말했다.

몸이 아픈 것 보다 학교에 나가지 못하는 게 더 가슴이 아팠다. 하늘도 전씨의 마음을 알았을까. 회복기간은 무척 빨랐고 7개월 만에 다시 학교를 찾을 수 있었다.

전씨는 “졸업식에 참석하니 꿈만 같다”며 “건강 상 중학교 진학은 일단 접었지만 공부는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졸업장을 받은 최고령 원춘희(81) 어르신은 “60년 전 헤어진 남편에게 가장 먼저 졸업장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원 어르신은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여덟에 결혼했다. 하지만 첫 딸을 낳은 지 채 한 달도 되기 전 남편이 전쟁터로 끌려갔다. 남편이 “반드시 살아오겠다”며 떠난 뒤 6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원 어르신은 “지난해 가을 단양 수학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됐다”며 “글을 몰라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다니는 것도 겁이 났는데 혼자서도 일처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날 함께 졸업장을 받은 이수미자(69)·이좌순(61) 자매는 중학교에 진학해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 전통음식점을 차리는 꿈을 꾸고 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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