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적’, ‘간이역 설치’ 꿈 이루기 위한 시골 소년의 분투
영화 ‘기적’, ‘간이역 설치’ 꿈 이루기 위한 시골 소년의 분투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9.17 14:33
  • 호수 7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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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1988년 국내에 처음 개통된 민자역인 ‘양원역’ 실화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건강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이번 작품은 1988년 국내에 처음 개통된 민자역인 ‘양원역’ 실화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건강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우리나라 최초 민자역인 ‘양원역’ 실화 배경… 박정민‧이성민 등 호연

카세트테이프, 빨간 우체통, 라붐 OST 등 80년대 소품 통해 향수 자극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있는 양원역. 1988년 4월 1일 개통한 임시승강장으로 현재도 무궁화호가 하루 왕복 2회, 백두대간협곡열차가 하루 왕복 2회 정차하고 있다. ‘양원’이란 이름은 봉화 소천면 원곡마을과 울진 금강송면 원곡마을 사이에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두 마을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약 6km의 산길을 빙빙 돌아나가야 할 정도로 열악했다. 철길을 따라 걷다가 열차에 부딪혀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이 백방으로 노력하다 결국 직접 돈을 모아 대합실, 승강장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역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양원역 탄생 실화를 배경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기적’이 9월 15일 개봉했다. 1980년대에 간이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골 고등학생의 노력을 담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는 고등학생이 된 ‘준경’(박정민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첫 등굣길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준경이 사는 마을에서 학교가 있는 읍내까지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인도나 찻길이 없고 오로지 기찻길로만 연결돼 있다. 그런데 집앞에는 기차를 탈 수 있는 기차역이 없어 준경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오로지 철길을 쭉 걸어 다른 마을에 있는 역까지 가야만 한다. 이로 인해 준경이 학교에 가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어렵게 등교한 학교에서 준경은 ‘라희’(임윤아 분)와 첫 만남을 가진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준경은 수학과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라희는 이러한 준경의 비범함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의 ‘뮤즈’를 자처한다. 교실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준경 옆을 떠나지 않던 라희는 어느날 준경이 가지고 있던 편지를 몰래 읽게 된다. 연애편지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청와대에 보내는 호소문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간이역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호소가 담겨 있었던 것. 

간이역 설치는 준경의 오랜 꿈이었다. 준경과 마을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는 기찻길이 매우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터널 속 철길에는 인도가 없었고, 그 아래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대가 정해져 있는 일반 기차는 괜찮지만, 화물 열차는 정해진 시간이 없었고, 기찻길로 걸어가던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시각에 화물열차가 달려오면 꼼짝없이 사고를 당해야 했다. 준경은 이사를 가자는 아버지 ‘태윤’(이성민 분)의 간곡한 설득도 뿌리치고, 누나 ‘보경’(이수경 분)과 함께 마을에 남아 청와대에 간이역 설치를 해달라고 50번도 넘게 편지를 보낸다. 물론 답장은 단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런 그에게 라희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한글맞춤법이 서툰 준경을 위해 맞춤법 수업을 해주기도 하고, 유명 인사가 되기 위해 ‘장학퀴즈’에 나가자고 하거나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에 응시해보자고 한다. 준경은 라희와 함께 ‘간이역 개통’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숨겨둔 그의 가족사가 드러나면서 영화의 갈등이 고조된다.

이 작품은 1980년대 한적한 시골 마을 배경으로 당시의 분위기와 시대 상황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전반부는 간이역 설치를 위해 노력하는 시골 고등학생들의 순수한 노력, 그 과정에서의 풋풋한 로맨스를 담고 있다. 지금은 거의 보기 어려운 카세트테이프, 문방구, 폴라로이드 사진기, 지도책, 빨간 우체통 등 소품들과 ‘장학퀴즈’, ‘유머 1번지’ 등 추억의 TV 프로그램, 그리고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 영화 ‘라붐’의 OST로 유명한 ‘리얼리티’(Reality) 등 시대를 풍미한 명곡을 통해 옛 감성을 자극한다.

반면 후반부는 준경이 간이역에 집착하는 숨겨진 사연과 반전이 펼쳐지며 가족애를 자극한다. 웃고 떠들다 마주하는 진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절로 눈물을 훔치게 만든다. 

배우들의 호연도 빛난다. 실제 나이보다 20살 가까이 어린 17살로 분한 박정민은 처음엔 어색하게 다가오지만 탄탄한 연기력으로 결국 이를 극복한다.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의 임윤아는 특유의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준경의 아버지와 누나로 분한 이성민과 이수경 역시 묵직한 존재감으로 안정감을 준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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