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숫자 ‘3(셋)’과의 기묘한 인연
[기고] 숫자 ‘3(셋)’과의 기묘한 인연
  • 정준태 서울 구로구 천왕이펜A 6단지 경로당 사무장
  • 승인 2021.10.01 14:15
  • 호수 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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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태 서울 구로구 천왕이펜A 6단지 경로당 사무장
정준태 서울 구로구 천왕이펜A 6단지 경로당 사무장

나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한데, 평생 ‘셋(3)’이라는 숫자가 따라다녀 이게 필연인지, 우연인지 생각하곤 한다.

먼저 7남매 중 위로 형‧누님에 이어 ‘세 번째’로 태어난 게 ‘3’과의 첫 인연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6남매가 누리지 못한 수(壽)와 복(福)까지 같이 다 챙겨보라는 게 내 운명일까.

8살에 충북 충주시에서 3번째로 문을 연 삼원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게 두 번째 인연이다. 이마가 주름진 지금도 옛 친구들이 문득문득 보고 싶다.

‘3과’의 세 번째 인연은 내 이름과 관련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내내 팔봉(八奉)이라고 불렸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는 호적등본을 떼보니 일제 때 이름인 차랑(次郞, 일본 발음으로 ‘지로’)으로 올라있는 게 아닌가. 이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세 번째 이름인 현재의 준태(準台)로 개명하게 된다. 

군복무 때 주특기도 세 개다. 1964년 10월 육군 제2훈련소를 거쳐 상무대 포병학교를 수료해 ‘포병측지사병’ 주특기로 졸병생활을 하다, 1966년 초여름 ‘항공사진해석병’으로 파월해 복무하다 장기 하사로 바뀌면서 ‘일반정보사병’ 주특기로 42개월의 군생활을 마쳤다. 오랜 파월 복무는 고엽제 후유증을 남겼고 국가유공자 7급을 받기에 이른다.

군복무 후에는 공채과정을 거쳐 공직에 입문해, 1968년 9월부터 33년 8개월간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2002년 57세로 연령정년퇴직을 했다. 

퇴직한 뒤 무위도식할 수가 없어 2002년 11월 당시 산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센터에 재취업해 공직의 연장선상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2005년 5월 두 번째로 60세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그 뒤론 고용수당을 받으면서 말 그대로 2년여 놀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7년 9월부터 2009년 2월말까지 자원봉사 성격의 초등학교 ‘배움터지킴이’로 일하다 ‘학교보안관’으로 직명이 변경돼 2018년 12월까지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애쓰던 중 학교보안관의 순차적 연령정년 퇴직규정에 따라 3번째 취업한 초등학교에서 11년 4개월만에 ‘3번째’로 퇴직하게 되었다.

현재는 ‘3년째’ 서울 구로구에서 ‘아동안전지킴이’는 봉사 중이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자리가 주어진다면 계속할 생각이다.

나에게 또 어떤 ‘3(셋)’이라는 숫자가 다가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의미 있고 감동을 주는 인연이 계속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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