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달고나’의 옛 추억
[백세시대 / 세상읽기] ‘달고나’의 옛 추억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10.15 14:21
  • 호수 7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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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나’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기자는 ‘달고나’를 ‘찍어먹기’로 기억하고 있다. 1960년대 가난했던 시절의 풍경 중 초등학교 앞 찍어먹기 장사를 에워싼 아이들 군상을 빼놓을 수 없다. 공짜로 하나 더 얻어먹기 위해 손가락으로 원형의 설탕과자를 오려내는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들. 

기자는 요즘도 종종 찍어먹기를 사먹곤 한다. 서울 명동에 몇몇 할머니들이 조그만 좌판에서 찍어먹기를 만들어 판다. 옛날과 다른 점은 비닐포장에 담겼다는 것이다. 기자는 유서(?) 깊은 명동칼국수를 먹은 뒤 한 개 1000원 하는 찍어먹기를 디저트로 즐긴다. 칼국수 반찬으로 따라 나오는 김치의 독한 마늘 냄새를 없앨 겸해서다. 

그런데 이 달달한 설탕 덩어리가 어느 날 갑자기 세계 유명 기호식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것은 최근 세계적으로 히트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 영향이다. 영화 속에서 이정재가 땀을 뻘뻘 흘리며 혀로 핥아 우산 모양으로 잘라내는 달고나 게임 장면이 나온다. 성공하면 살고 실패하면 죽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이 장면 하나로 달고나는 인기 기호식품이 됐고 영화에 달고나를 납품한 달고나가게는 하루아침에 명소가 됐다. 

서울 대학가에 위치한 달고나가게의 주인은 “영화 제작자 측의 요청으로 사흘간 직접 ‘오징어 게임’ 소품을 만들었다”며 “설탕만 15kg을 들여 700여개를 찍어냈다”고 했다. 

달고나 선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집마다 달고나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들을 위해 국자, 누름판 등의 재료를 구비한 달고나 세트도 국내외에서 판매되고 있다. 

쿠팡에서는 달고나 세트가 최저 6900원에서 2만8000원 한다. 아마존닷컴에서는 달고나 캔디 키트라는 이름으로 17~2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틱톡·유튜브 등에서 외국인이 직접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한국 베이커리점에선 캔에 달고나를 넣어 5달러에 판매하기도 한다.

달고나는 지역마다 다르게 불렸던 것 같다. 서울 등 수도권에선 ‘찍어먹기’ ‘뽑기’, 충청 지역에선 ‘띠기’, 대구·경북에선 ‘국자’ ‘파짜꿍’, 부산·경남에선 ‘쪽자’ ‘하치’ ‘구지’ ‘노카묵기’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제주에선 ‘떼기’, 통영에선 ‘야바구’, 마산에선 ‘오리떼기’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는 증언도 있다. 

초등학교 앞에 늙수그레한 남자가 사과상자만한 좌판에 연탄불을 피우고 숟가락보다 조금 큰 양은국자에 한 스푼 반 정도 설탕을 담아 연탄불에 녹여낸다. 설탕이 녹아 투명한 액체로 변하는 순간 소다를 소량 넣어 부풀린 다음 철판에 쏟아 호떡을 누를 때 쓰는 동그라미 형태의 누름판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그 위에 하트, 별, 우산 등 다양한 형태의 틀을 올려놓고 눌러 찍어낸 것이 찍어먹기다. 아이들이 원래의 모양대로 잘 뽑아내면 보너스로 하나를 더 주곤 했다.  

찍어먹기는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고 설탕이 녹는 모양과 향, 맛이 독특해 인기였다. 아이들은 집에서 국자에 설탕을 녹여 만들어먹기도 했지만 다양한 모양의 틀을 구할 수가 없어 신공 발휘를 할 수 없는 걸 아쉬워하곤 했다. 

기자는 요즘도 재미 삼아 ‘찍어먹기’의 추억을 되살려 야금야금 뽑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커다란 손과 헝그리 정신 결여로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찍어먹기가 영화의 한 장면으로 소환되자, 50년도 더된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늘 허허롭던 뱃속, 골목길을 뛰던 검정고무신 그리고 솜털 같았던 소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재밌는 건 ‘대박’, ‘치맥’ 같은 한국 단어가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올랐듯 ‘달고나’도 외국사전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달고나’와 관련해 이런 말도 했다. 

“마음에 드는 대통령 후보가 없는데 달고나 게임 잘하는 이를 뽑으면 어떨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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