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回春) 20
회춘(回春) 20
  • 서진모
  • 승인 2009.03.07 10:02
  • 호수 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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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여자의 욕망

“준식이! 맥주는 말이야 뚜껑을 열어두면 김이 빠지지만 포도주는 미리 따라두면 더 맛이 좋다고 하지. 보리는 겨울의 추운 기억을 먹고 자라고 포도는 따가운 여름 햇볕을 추억한다고 했어. 그리고 맥주가 펄떡펄떡한 청년의 기운을 식혀주는 맛이 있다면 와인은 확실히 인생의 맛을 좀 아는 사람에게 어울린다는 말 들어봤어…?”

“아닙니다. 처음 듣는 말인데 그럴 듯 하군요.”
“응, 어느 영화 속의 이야기야….”

숙경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담배에다 또 불을 붙였다. 정원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그녀의 눈가에 잔잔한 눈물이 맺히는 듯 했다. 이렇듯 인간적인 외로움에 젖어있던 그녀가 불쑥 놀라운 주문을 했다.

“이봐, 준식이.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우리들의 이 비밀 관계가 내 남편에게 발각되거나 혹 우리의 불륜 정사 현장을 들키게 되면 말이야, 그땐 준식이가 나를 강제로 겁탈한 것으로 해야 해. 알았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인지…?”

“그럴 이유가 있어. 우리의 관계가 만약 그 사람 눈에 띄게 되거나 눈치를 채면 절대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거든. 무식한 자 간 크다구. 그 사람은 그런 일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야. 내가 자기의 조강지처는 아니지만 엄연히 혼인신고가 되어 있으니까 반드시 우릴 간통죄로 고소하고 위자료 한 푼도 안주고 얼씨구나 하고 나를 내쫓아 낼 거야. 꼭 그렇게 할 사람이야. 그 사람은 돈 밖에 모르거든.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그, 그렇지만 강간이니 겁탈이란 말은 좀….”

“아니야. 내가 만일 그 사람과 같이 돈만 생각한다면 오늘이라도 내가 먼저 그 젊은 기집애와 두 인간을 당장 간통죄로 잡아 가두고 위자료를 톡톡히 받아낼 수 있지만 난 그렇게 치사하고 추하게 살고 싶진 않아. 준식이! 그러니까 우리 위장 강간이라는 조금은 색다르고 편법적인 수단을 좀 쓰자는 거야. 그렇다구 날 절대로 오해하거나 나쁜 여자로는 보지 마. 사람은 자기 수완대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저런 수전노 같은 인간의 돈은 좀 빼내서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것도 괜찮아.

만약 간통죄로 걸리면 내 남편이 피해자라고 나서서 우리 둘을 함께 구속시킬 수 있지만 강간죄가 되면 내가 피해자가 되어 설사 준식이 구속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적절한 시점에 취하를 하고 합의하면 곧바로 풀려나오는 거야. 이게 친고죄라는 법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준식이가 당하는 심적 육체적 고초에 따른 보상은 내가 다 해줄 테니까, 알았지? 이런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우리나라 법이거든.”

준식은 어리둥절했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고 자신이 강간죄를 뒤집어쓰고 전과자가 되어 버린다는 게 억울하고 불쾌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숙경의 논리적이고 저돌적인 설득에 선뜻 반대하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 여자야 말로 지금 내 인생의 구원자이며 소중한 파트너가 아니던가.

그로부터 20여일 뒤 숙경의 남편인 박 사장이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마누라 생일이 지나가도 전화 한 통 없던 사람이 일본 출장 간다고 전화를 해 왔을 때 숙경의 기분은 마치 벌레 씹은 기분이었다.

또 그 기집애 데리고 가겠지. 옛말에 홧김에 뭣 한다는 말이 있듯이 때는 이 때다 하고 숙경의 마음은 확고해지고 있었다.

남편과 별거를 하고 있어도 남자의 품이 이토록 간절하게 그리운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준식과 가진 관계 몇 번, 그 뒤부터는 자다가도 남자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돈과 여자 밖에 모르는 남편보다는 비록 가난하지만 문학을 알고 예술을 사랑하고 여자를 다룰 줄 아는 남자 장준식이 좋아서 견딜 수가 없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눈시울이 젖을 것만 같은 남자로 자꾸만 다가오고 있다.

이날 밤 두 사람은 또 한 차례 비밀 정사를 시도했다. 임신도 출산경험도 없는 여자인지라 숙경은 옷을 벗겨 놓으면 마치 비너스 상 같이 깨끗하고 볼륨 있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가 이미 육체를 확인해서 그런지 조금도 부끄러움 없고 망설임 없이 옷을 벗을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정이란 시간이 갈수록 조금 더 서로의 몸 깊은 곳을 탐닉하고 싶고, 여유 있게 더 멋진 육체의 향연을 베풀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었다.

긴 입맞춤이 끝나자 숙경은 침대로 올라가 “나 오늘 밤 한 마리 경주마가 되어 쾌락의 성을 향해 달리고 싶어…”라며 베개를 이마에 대고 자연스럽게 엎드렸다.

윤기 흐르는 피부는 말할 것도 없고 풍만한 가슴, 잘 익은 복숭아를 크게 확대시켜 둔 듯 그녀의 히프는 매우 탐스러웠다. 그 위로 이성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싱그러운 떨림이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제 운명적인 에로스의 밧줄은 두 사람의 영혼까지 꽁꽁 동여매고 있었다.

“준식이! 나 오늘 밤 준식이의 몸 향기에 푹 취하고 싶어. 내 마음 이해할 수 있겠어…?”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육체는 다시 바람결에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타올랐고 근육질 나신의 준식은 그야말로 마치 달리는 경주마 등짝같이 출렁이는 그녀의 엎드린 몸 뒤로 맹렬한 공격을 시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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