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노래 ‘울며 헤진 부산항’에 서린 참뜻 /이동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노래 ‘울며 헤진 부산항’에 서린 참뜻 /이동순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21.10.29 14:26
  • 호수 7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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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일제의 인력 공출로 인해

부관연락선을 타야만 했던

징용 한인들의 쓰라린 이별

그 절절한 아픔을 담은 노래

남인수, 단골 앙코르 곡으로 불러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부산항구의 쓰라린 이별을 다룬 가장 대표적인 대중가요를 하나 들라면 우리는 ‘울며 헤진 부산항’(1939)을 먼저 손꼽기에 주저하지 않겠다.

제국주의 철권통치의 압제가 점차 극에 달해가던 1939년, 이 한 해 동안 일제는 어떤 음모와 비극적 일들을 저질렀던가? 조선의 물자와 인력을 강압적으로 착취해가려는 ‘조선징발령’, 민족주의 세력들을 철저히 단속하려는 ‘국경취체법’, 한국인을 일제경찰의 보조역으로 부리려던 간교한 의도로 만든 ‘경방단(警防團) 규칙’, 일제 말까지 무려 45만 명의 한국인을 그들의 전쟁준비 도구로 끌고 간 ‘국민징용령’, ‘총동원 물자사용 수용령’ 따위의 식민지 악법을 공포하고 실행에 옮겼다. 실제로 그해 9월부터 부산항 제2부두에서는 일본으로 끌려가는 한국인 노동자공출이 시작됐던 것이다. 

공출(供出)이란 식민지 시절, 일제가 군수물자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실시한 각종 물자의 강압적 수탈정책을 일컫는다. 1938년 일본은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이른바 ‘국가총동원법’이란 것을 공포하고, 이를 식민지 조선에도 확대 적용했다. 

이 악법을 바탕으로 일제는 군수물자 및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 공출이란 제도를 실시했다. 여기에는 물자공출, 인력공출이 있었는데, 이로부터 부산항에는 일본으로 떠나는 한국인 노동자와 그들을 피눈물로 배웅하는 가족, 친지들의 행렬로 붐비었다. 말하자면 인력공출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작별의 뼈저린 통곡이 들려왔고 가족 친지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기약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살아서 정든 고향 땅을 밟을 수는 있을까? 하지만 출발을 재촉하는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는 줄곧 들려오고, 뱃고동은 연신 울었다. 

떠나는 사람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뱃전의 갑판에 기대어 선다. 떠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은 서로 손수건을 흔들며 애간장이 끊어지는 마음의 깊은 정을 주고받는다. 노래 ‘울며 헤진 부산항’의 가사 내용과 분위기는 온통 이런 이별 정서로 흥건하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는/ 연락선 난간머리 흘러온 달빛/ 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끼리 음~ 음~/ 달빛 아랜 허허바다 파도만 치고/ 부산항 간곳없는 검은 수평선/ 이별만은 무정터라 이별만은 야속터라/ 더구나 못 잊을 사람끼리 사람끼리

가사의 전편을 음미해보기로 하자. 부관연락선은 일본으로 떠나는 인력집단을 싣고 부산항 부두를 막 출발했다. 선박의 굴뚝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는 부두에 뒤덮이고 슬픈 뱃고동 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연락선은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간다. 출항시간은 대개 저녁 무렵이었다. 밤을 현해탄에서 보낸 다음날 아침에 일본의 항구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연락선 난간에서 올려다보는 부산항 달빛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왼쪽으로 오륙도가 잠시 보이는가 했더니 어느 틈에 부산항구는 멀어지고 이젠 깜박이던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다시 찾아보려 눈을 크게 떠보지만 고국 땅은 아주 보이지 않고, 캄캄한 밤바다 위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다. 

정든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람과의 작별은 어찌 이다지도 사람의 애간장을 끊어내고 있는가? 작사가 조명암은 이 부분에 착안하여 그야말로 창자를 토막토막 끊어내는 사연을 단장(斷腸)의 고통으로 엮어서 노래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이런 심정은 일제말 한국인 모두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대변한 것에 다름 아니다.  

워낙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높아서 ‘가요황제’로까지 불렸던 남인수는 악극단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목이 울컥 잠겨오고 피눈물이 솟구쳤다고 한다. 그의 특색은 한창 흥이 달아올랐을 때 마이크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육성으로 불러대는 것이다. 그럴 때 청중들은 더욱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카랑카랑하면서 비극적 애수의 정감으로 뭉쳐진 가수의 음색은 듣는 이에게 또렷하고도 깊은 감동으로 유감없이 젖어 들었다. 

남인수는 훗날 고백하기를 무대에서 팬들로부터 앙코르를 요청받을 때 참으로 많은 자신의 곡목들 가운데 반드시 이 ‘울며 헤진 부산항’만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 노래의 가사가 민족사의 아픔을 가장 절절히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에 서려있는 역사적 비극의 페이소스는 우리가 차마 두 번 다시 겪지 말아야 할 상처와 아픔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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