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하지 못한 일 이뤘을 때 쾌감 짜릿”
“남들 하지 못한 일 이뤘을 때 쾌감 짜릿”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3.09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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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노년] 서울노인복지센터 ‘탑리서치’ 김태호(71) 어르신
▲ 서울노인복지센터 ‘탑리서치’ 김태호(71) 어르신.
설문조사원이라고 하면 젊은 대학생 혹은 주부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깬 어르신들이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운영하는 ‘탑리서치’(TOP-Research) 어르신들이다. 2007년 창립된 탑리서치는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기업, 공공기관, 대학 등을 방문해 설문조사를 벌이는 노인일자리사업체다.

현재 만 60세 이상 23명의 어르신들이 기업, 공공기관, 대학 등을 다니며 설문조사를 벌인다. 어르신들 가운데 전직 언론인, 건설회사 대표, 연구원, 연구소장, 공무원, 대기업 이사들도 포함돼 있다. 탑리서치는 사업자등록증까지 취득한 어엿한 기업이다.

3년째 탑리서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태호(71) 어르신도 몇 년 전까지 건설회사와 양돈업 등 개인 사업을 했던 ‘사장님’이었다.

그가 설문조사원으로 활동하게 된 때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난으로 20여년 동안 운영하던 양돈업을 접고 할 일 없이 지내기를 1년. ‘이렇게 세월을 보내면 안되겠다’ 싶어 때마침 열린 취업박람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리서치업체인 케이디엔(KDN‧코리아데이터네트워크)과 인연을 맺고 설문조사원의 길에 접어들게 됐다.

평소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김 어르신이지만 설문조사원 생활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면접조사를 위해 지겹게 걸어야 했다. 설문조사에 대한 인식도 호의적이지 않다보니 손자 혹은 아들 뻘되는 젊은이들에게 수차례 거절도 당했다.

김 어르신은 아직도 힘겨웠던 첫 설문조사를 잊지 못한다. “서울 강남지역 벤처기업 실태조사였지요. 강남지역은 설문조사가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혀요. 고학력에 젊은이들이 많다보니 설문에 쉽게 응하지 않아요. 설문조사원들 사이에서는 ‘절을 10번 해야 한 건을 건질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니까요.”

그렇다고 쉽게 물러설 수만은 없었다. 사업 경험과 타고난 근성으로 일에 전념했다. 그 결과 남들은 기껏해야 10여건도 어려운 설문조사를 무려 64건이나 해낸 것. 점차 ‘일 잘 한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굴지의 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를 비롯해 코리아리서치, 동서리서치 등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다.

김 어르신이 ‘탑리서치’ 직원으로 활동하게 된 때는 2007년부터다. 중고령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원을 모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동안 설문조사원으로 활동하던 배정환(67)‧소명천(67)씨와 최혜송(72) 어르신과 창립멤버가 됐다.

김 어르신의 한 달 평균임금은 150만원. 전 직원 평균임금이 100만원인 것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이런 성과의 비결은 철두철미한 사전 준비를 꼽을 수 있다. 설문대상자의 사전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설문지 문항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기 위해 적어도 수십 번씩 질문을 읽는다.

약속장소에 30분 일찍 나가는 일은 오랜 습관이 됐다. 현장에 나가는 일이 없다고 마냥 쉬지 않는다. 상담자와 매끄러운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신문과 인터넷 자료를 스크랩한다.

김 어르신은 설문조사원을 하면서 ‘나이’를 버렸다. “설문조사를 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바로 나이입니다. 조사를 하다보면 젊은이들을 많이 상대하게 되지요. 나이 많은 조사자들을 보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지요. 헝클어진 모습은 절대 금물입니다. 말투와 행동이 곧 신용이기 때문이지요.”

김 어르신은 잊지 못할 에피소드 두 가지를 들려줬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2006년 산림청이 주관한 ‘산림청 임산물 통계조사’를 할 때다. 임산물 통계를 내기 위해 2달 동안 주소 하나로 전국 산을 누비고 다녔다. 낯선 마을을 돌아다니며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임업 종사자들과 삶의 애환을 나누며 끈끈한 정을 나눴다.

2년 전 덤프트럭 기사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작업을 두 번째 추억으로 꼽았다. 촌각을 다투며 일을 하는 기사들에게 설문조사는 거추장스런 일었다. 마감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문조사팀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일이 진척 되지 않자 조사자들은 하나둘 포기했다. 하지만 김태호 어르신과 총무 배정환씨 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제 날짜에 설문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김 어르신은 그때를 회상하며 “남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해냈을 때의 쾌감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며 “그게 설문조사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는 김태호 어르신은 오늘도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 딛고 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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