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관 ‘인사동 출토 유물 공개전’…구텐베르크 활자보다 앞선 조선 금속활자 첫 공개
고궁박물관 ‘인사동 출토 유물 공개전’…구텐베르크 활자보다 앞선 조선 금속활자 첫 공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11.12 15:15
  • 호수 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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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5월 발굴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선 초기 금속활자 ‘갑인자’ 등 인사동 출토유물을 전부 공개해 그 가치와 중요성을 살펴본다. 사진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확대경을 이용해 금속활자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5월 발굴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선 초기 금속활자 ‘갑인자’ 등 인사동 출토유물을 전부 공개해 그 가치와 중요성을 살펴본다. 사진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확대경을 이용해 금속활자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434년 세종이 만든 ‘갑인자’ 실물로 첫 확인… 확대경으로 볼 수 있어 

낮엔 해, 밤엔 별자리로 시간 확인한 ‘일성정시의’도 처음 모습 드러내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세종대왕이 이룬 수많은 업적 중 한글창제에 비해 덜 알려진 것이 금속활자 인쇄술 정착이다. 세종은 글씨에 뛰어났던 아들 수양대군(세조)과 장영실 등 최고 인재를 참여시켜 금속활자 제작에 나섰다. 이렇게 1434년 탄생한 ‘갑인자’는 조판(組版)힐 때 기존 밀랍 고정에서 탈피해 죽목(竹木)으로 활자 사이 빈틈을 메워 제판하는 방식으로 조선 금속활자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갑인자는 최근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인 갑인자본 ‘근사록’(1436)이 제작되는데 활용됐다. 하지만 ‘갑인자’는 그간 실물은 확인할 수 없고 기록만 남아 있었다. 지난 6월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난 6월 깜짝 발견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사동 출토 유물을 대거 선보이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12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인사동 출토 유물 공개전’은 실체가 확인된 적 없었던 ‘갑인자’를 비롯해 금속활자 1600여점과 당시 과학기술을 알려주는 ‘일성정시의’, ‘소일영’ 등 금속 유물을 최초 공개한다. 

유물의 발견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동(銅)은 조선시대에도 매우 귀한 금속이었는데 유물이 발견된 지역은 평민이 살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궁과 관련되지 않고서는 이같이 많은 금속 유물이 한군데 모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발견된 유물 일부가 의도적으로 절단된 것으로 보고 이들 금속을 녹여 다른 것을 제작하려고 했다는 추측도 나왔다. 

1600여점 중 300여점만 주조시기 확인

전시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먼저 1부에서는 이번에 출토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전부를 공개한다. 금속활자는 한자가 1000여점, 한글이 600여점으로 304점은 주조 시기가 밝혀졌고 1300여점은 제작 시기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육안으로는 활자들의 세밀한 부분까지 확인하기 어려운 것을 감안해 전시장 곳곳에는 확대경과 사진을 담은 휴대용 컴퓨터를 설치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중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볼 활자는 단연 ‘갑인자’이다. 갑인자는 터널 형태로 오목하게 파인 조선시대의 다른 활자와는 달리 네 면이 평평한 됫박 모양이 특징이다. 기존 한글 금속활자보다 제작 시기가 20년 남짓 이른 조선 최고의 금속활자 실물이자 서양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 관련 유물보다 10여 년 앞선다.

갑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활자는 ‘불 화(火)’ ‘그늘 음(陰)’ 등 소자(小字, 가로 0.8cm, 세로 1.5cm) 48점과 ‘돌고무래 독(碡)’ 등 대자(大字, 가로 1.6cm, 세로 1.5cm) 5점이다. 이중 소자의 경우 이건희 컬랙션 중 하나인 근사록에 나오는 글자와 대조해 ‘추정 활자’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출토된 주요 금속활자들.
출토된 주요 금속활자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갑인자는 조판 과정에 과학자들이 상당히 참여해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라며 “이전 금속활자로는 하루 10장을 인쇄하기도 힘들었다면, 갑인자로는 40장까지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당시 인쇄술의 혁신적 발전에 기여했던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한글 금속활자들도 역사적 가치가 높다.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세종이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신숙주, 박팽년 등에게 지시해 간행돼      ㅭ(리을여린히읗), ㆆ(여린히읗), ㅸ(순경음 비읍) 등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처음으로 확인됐고, 크기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전시에서는 초기 한글이 어떻게 활용됐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동국정운(국보 142호)도 함께 소개한다. 

‘ㅭ’, ‘ㆆ’ 등 희귀 한글 활자도 선봬

이어지는 2부에서는 해시계와 자동 물시계 부품 등 기록으로만 전하던 국보·보물급 유물이 관객을 반긴다. 이중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1437년 세종의 명으로 처음 제작된 주‧야 겸용 시계로 중국에서 전래된 혼천의와 간의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크기를 소형화한 시계다. ‘조선왕조실록’에 제작됐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일부 모습을 드러냈다.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한 시계로 쓰인 도구다. 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해시계 ‘소일영(小日影)’이 그 옆에 있어 이를 참고하면 전체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소일영의 전체 모습이 공개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함께 자동 물시계 부품인 ‘일전(一箭)’도 전시장에 나왔다. 직사각형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린 부품으로 물시계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인형이 작동하도록 구슬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개인화기인 승자총통(1583) 1점과 소승자총통(1588) 7점 등도 소개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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