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빠른 출발’보다는 ‘완주’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빠른 출발’보다는 ‘완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11.19 14:03
  • 호수 7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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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나영석 PD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여러 의미로 재미있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이 방송에서 나 PD는 이제는 방송인으로 더 유명해진 가수 겸 작곡가 유희열이 대표로 있는 기획사 ‘안테나’를 찾아 퀴즈대결을 벌였다. ‘안테나’는 고학력 가수들이 즐비한 기획사로 유명하다. 수장인 유희열은 서울대 작곡과 출신이고, 소속가수인 루시드 폴은 최우수논문발표상을 받기도 한 공학박사다. 또 신재평‧이장원으로 구성된 페퍼톤스는 멤버 둘 다 국내 최고의 과학 인재들이 모인다는 카이스트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방송에서 나 PD는 경기도 대표로 수학경시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던 페퍼톤스 멤버들에게 지난해 수능시험 수학영역 최고난도 문제를 3분 안에 풀라고 제시했다. 해당 문제의 정답률은 7%로 극악의 난이도였지만 카이스트 출신이니 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결국 1시간도 넘게 문제에 매달려 하나의 답을 도출했지만 결과는 오답이었다. 이후 페퍼톤스의 두 멤버는 정답풀이를 읽어나간 후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고등학생들 머리가 진짜 좋구나.”

올해 노인 연령대에 진입한 필자의 장모님은 얼마 전 자격을 취득해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후 학업과 연을 끊었다가 7년 전 사이버대학에 진학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공부를 이어가 요양보호사가 된 것이다. 장모님은 얼마 전 본인이 돌보고 있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르신은 다섯 번째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무시 받고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해 아직까지 한글을 읽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어느 정도 재산을 축적한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학력은 낮지만 경험과 지혜로 험난한 세상을 남부럽지 않게 살아낸 것이다. 

장모님 역시 현재 평생교육사를 공부하고 있다. 많이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을 가르치며 늙어가는 게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했다.

11월 18일 코로나 시대 두 번째 수능시험을 치렀다. 해마다 수능 성적을 비관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앞서 밝혔듯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 역시 수능 앞에서 쩔쩔맨다. 그런 문제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풀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수능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흔히 수능을 인생의 출발선에 비유한다. 성적이 좋으면 앞서 나간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비록 한 번 넘어졌더라도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분명한 목표를 세워 나아가면 1등은 아닐지라도 성공적인 완주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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