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죽어선 한줌의 흙으로”
[백세시대 / 세상읽기] “죽어선 한줌의 흙으로”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11.19 14:09
  • 호수 79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골 빈집들이 늘어나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유튜브엔 빈집으로 마을 전체가 지도상에서 사라진다는 극단적인 영상도 올라온다. 그런 현상을 접할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해결책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걸 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게 인간의 과욕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대도시에 살고 싶어 하는 욕망에 가득 차 있다. 부동산 문제 등 각종 사회 병폐가 그로 인해 발생한다. 노인들마저 “시골에선 할 일이 없다”, “사람도 없다”, “병원도 없다”며 도시를 떠나려하지 않는다. 평생 동안 온갖 분비물과 생활쓰레기를 도시에 남겨놓고 마지막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호스 끼고 의식도 못 차린 채 버티다 생을 마감하는 걸 당연시 여긴다. 

이런 한심한 세태 속에서 일찍이 숲으로 찾아들어가 자연의 일부가 돼 건강한 삶을 사는 ‘현자’들이 꽤 있다. 고진하(68) 시인도 그 중 한 명이다. 영랑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을 수상한 고 시인은 강원도 원주 명봉산 기슭의 낡은 한옥에 기거하고 있다. 한옥 이름도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불편당’(不便堂)이라 붙였다. 

그는 10여년간 직접 땅을 일구고 토종 씨앗을 뿌려 농작물을 거두는 농부이기도 하다. 그의 부인은 ‘야생초 요리가’로 마당의 야생초를 뜯어다 샐러드나 반찬을 만든다. 부인이 야생초에 반한 계기가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마트에 갔다가 천정부지로 오른 배추를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돌아왔다. 마루에 앉아 잡초 밭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 놀라운 발견을 했다. ‘잡초도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개망초와 질경이를 뜯어다 비빔밥을 만들었고 고 시인은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고 시인은 “마당에 보석을 두고도 몰라봤다. 앞마당과 뒤뜰의 잡초들을 세어보니 먹을 수 있는 것만 80종이나 됐다. 더구나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달리 제초제도 안 친 무공해에 약성도 강한 야생 토종들”이라고 감탄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은 겪은 일이다. 수년 전 약초학자 최진규 박사는 항암치료제로 주목 받는 풀을 찾아 아마존까지 들어가 대량으로 뜯어 말려 어렵사리 가져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집 마당에 똑같이 생긴 풀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고 시인은 이때부터 야생초 전도사가 됐다. 잡초비빔밥에 잡초비빔라면까지 밥상엔 잡초가 빠지지 않았다. 그랬더니 쭈글쭈글하게 노화현상이 완연하던 귀가 새싹처럼 펴지고, 누렇던 오줌도 맑아지고, 쌕쌕거리던 숨소리도 평안해지고, 조금만 걸어도 지쳤던 몸은 이제 한 번에 만보 정도 걸어서는 성이 차지 않을 정도가 됐다. 생인손을 앓던 부인의 손발톱 염증도 가라앉았다. 늘 체한 것 같다던 딸은 토끼풀 샐러드를 먹고는 오래도록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고 시인은 “가뭄으로 농작물이 노랗게 타들어가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푸른빛을 뽐내며 쑥쑥 자라는 게 잡초”라며 야생의 약효를 소개했다.

비름은 심혈관에 좋고 우슬초는 관절염에 좋고 환삼덩굴은 고혈압에 그만이고, 질경이는 눈을 밝게 하고 엉겅퀴는 간경화와 황달에 좋고 왕고들빼기는 인후염과 편도선에 좋고 쇠별꽃은 자궁병과 심장병에 좋고 소루쟁이는 변비와 소화불량에 좋고 벼룩나물은 해열과 해독을 돕는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아프면 어떡하나, 병원이 가까운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인들에게는 고 시인의 건강한 일상이 앞으로의 남은 삶을 가리켜주는 이정표가 될 것 같다. 

어른들이 복잡한 도시를 후손들에게 넘겨주고 자기들은 시골의 빈집으로 돌아가는 건 국가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죽어선 한줌의 흙으로 남는다’는 자연의 섭리와도 일치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