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싸나희 순정’, 도시 탈출한 시인과 동심 가득한 농부의 한집 살이
영화 ‘싸나희 순정’, 도시 탈출한 시인과 동심 가득한 농부의 한집 살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11.26 15:05
  • 호수 7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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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로 유명한 류근 시인이 SNS에 연재해 화제를 모은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으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세속에 찌든 도시 시인과 순박한 시골 농부의 우정을 따뜻하게 다룬다.
이번 작품은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로 유명한 류근 시인이 SNS에 연재해 화제를 모은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으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세속에 찌든 도시 시인과 순박한 시골 농부의 우정을 따뜻하게 다룬다.

류근 시인, 퍼엉 작가의 웹툰 원작… ‘미생’ 전석호, ‘기생충’ 박명훈 주연

아름다운 시골 풍경 배경으로 소소한 에피소드, 대사 통해 따뜻한 위로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가 있거든요.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슬럼프에 빠져 충청도의 한 시골로 오게 된 시인 ‘유 씨’가 자신에게 방 한 칸을 내어준 마을 청년 ‘원보’에게 건넨 위로의 말이다. 원보는 오랜 시간 이어온 짝사랑을 막 끝내고 슬픔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감동 받을 법한 위로였지만 원보는 되레 당차게 반박한다. “사나이 순정은 영원한 것”이라고. 유명 배우도 출연하지 않고, 독창적인 이야기도 아니지만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 ‘싸나희 순정’ 이야기다.

11월 25일 개봉한 ‘싸나희 순정’은 도시의 고단한 삶에서 도피한 시인 ‘유 씨’(전석호 분)와 엉뚱발랄한 농부 ‘원보’(박명훈 분)의 우연한 동거 이야기를 다룬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나이의 좌충우돌을 다룬 이 작품은 페이스북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연재된 류근 시인의 ‘주인집 아저씨’ 이야기에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퍼엉 작가의 삽화를 더해 출간된 웹툰 ‘싸나희 순정’이 원작이다. KBS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로 유명한 류근 시인은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작품은 슬럼프에 빠져 시를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유 씨’가 충동적으로 기차에 올라타면서 시작된다. 목적지 없이 달려가던 그는 문득 차창 밖으로 도라지꽃이 만발해 있는 한 풍경에 매료된다. 무작정 기차에서 내린 그는 도라지밭에 누워 삭막한 도시 생활과 창작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즐긴다.

이때 그의 평화를 깬 것이 순박한 시골 농부 ‘원보’였다. 원보는 “남의 농사를 망칠 거냐”며 유 씨를 타박했고, 이에 유 씨는 그에게 변상하겠다고 답을 한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됐씨유. 이 세상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되는 것만은 아니구만유.”

이미 마을 풍경에 반한 유 씨는 타박에도 굴하지 않고 원보에게 마을에 남는 방이 있냐 물었고 오지랖이 넓은 원보는 언제 구박했냐는 듯 자신이 사는 집의 빈방을 내어준다. 

유 씨는 그렇게 충청도의 한 시골 마을에 잠시 눌러앉게 되지만 생활 방식은 도시에서와 다르지 않다. 시골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매일 술에 의지하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원보가 다시 그의 삶에 끼어든다. 아침부터 그를 깨워 손수 키운 농작물로 만든 식사를 대접하지만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유 씨는 부담스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보의 계속된 권유로 인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옻닭을 나눠 먹고 치한으로 몰리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시골 생활에 스며들어 간다. 

또 유 씨는 원보가 짝사랑녀에게 고백조차 못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진심이 담긴 위로를 건넸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한층 가까워진다. 하지만 쑥쑥 커 가던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 씨가 원보가 쓴 글귀를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는데 원보가 이 사실을 알고 ‘표절했다’며 그를 추궁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유 씨에게 좋은 제안이 들어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큰 위기에 빠진다.

이 작품은 시인이지만 도시 생활에 찌들어 동심을 완전히 잃은 유 씨와 평범한 농부이지만 순수한 아이 같은 감성으로 오히려 더 시인 같은 원보의 우정을 담백하게 다룬다. 두 사람이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인심 좋은 주민들과 만들어 가는 잔잔한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힐링이 된다. 특히 코로나로 지친 이들은 ‘나도 저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사건과 사건 사이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대사들은 관객들을 울리고 웃긴다. “우리 집 거울은 울 엄마의 눈, 내가 웃으면 울 엄마도 웃지요”, “껴안고 울어서 그 힘으로 뽕나무들이 살게 해야쥬”, “순정만 반짝반짝 살아 있으면 그걸로 아름다운 거유” 등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운 대사들을 듣다 보면 절로 따뜻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미생’, ‘킹덤’ 등으로 연기력을 뽐낸 전석호와 ‘기생충’의 지하실 남자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박명훈의 호흡이 인상적이다. 두 배우는 각각 유 씨와 원보를 통해 티격태격 하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보듬어주며 관객들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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