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무색케하는 어르신들의 창의력…티셔츠 디자인 해 ‘패션쇼’ 연 경로당 어르신들
나이 무색케하는 어르신들의 창의력…티셔츠 디자인 해 ‘패션쇼’ 연 경로당 어르신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12.03 15:37
  • 호수 7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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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 창작, 영화 연출, 옷 디자인 등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에서 어르신들이 활약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은 충남 홍성군 천태1구경로당 어르신들이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입고 즐거워하는 모습.
최근 문학 창작, 영화 연출, 옷 디자인 등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에서 어르신들이 활약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은 충남 홍성군 천태1구경로당 어르신들이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입고 즐거워하는 모습.

충남 홍성군 천태1구경로당 회원들, 직접 티셔츠 만들어 판매까지

전남 장흥군 월림경로당 회원들 시집 판매해 인세 300만원 기부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11월 24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천태1구경로당에서는 이색 패션쇼가 개최됐다. 몸뻬를 입은 어르신들이 경로당 앞에 조성한 나무데크를 런웨이 삼아 신명나게 걸으며 꽃 그림이 그려진 형형색색의 티셔츠를 뽐냈다. 놀랍게도 이날 어르신들이 입은 티셔츠는 전부 직접 그림을 그려 디자인한 것이었다. 제작한 티셔츠는 판매도 진행해 수익금은 어르신들에게 배분할 예정이다. 정옥휘(84) 어르신은 “처음 해본 일이라 걱정됐지만 손주들이 갖고 싶다고 해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문학‧영화‧디자인 등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에 잇달아 도전하며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젊은 시절 문화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다 뒤늦게 시작해 얻은 성과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어르신들이 가장 활발히 창의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시 창작’이다.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가 문해교육으로 거듭난 어르신들이 한글자씩 정성스레 쓴 시들을 모아 시집으로 출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2019년 나란히 개봉한 ‘칠곡 가시나들’, ‘시인 할매’ 등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해 생애 처음으로 시화집 ‘할매들은 시방’을 출판한 전남 장흥군 월림경로당 ‘할매 6인방’은 최근 인세 수입 300만원 전액을 장흥군 용산면 청소년들을 위해 기부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9월 작고한 92세 최고령 김남주 어르신을 비롯해 백남순(86), 위금남(83), 김기순(82), 박연심(81), 정점남(81) 어르신은 2015년부터 마을에서 2km 떨어진 용산초등학교 한글교실을 다니며 한글을 깨쳤다. 그리고 2017년부터는 장흥문화공작소 황희영 씨의 도움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르신들은 삶의 경험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풀어냈고 지난해 ‘두근두근 내 생애 첫 시와 그림’ 프로그램에 참여해 시화집 ‘할매들은 시방’을 완성했다. 

가장 연장자인 김남주 어르신은 “아흔이 되도록 살아도 여전히 시를 쓰며 사는 것이 기쁘다”고 고백했다. 김기순 어르신은 ‘내 친구 고양이 깜동이’라는 시를 통해 “밥 삶아 줄게 나 두고 죽지 마”라며 노년의 외로움을 표현했다. ‘할매들은 시방’은 1쇄 2000부가 모두 팔리는 성과를 거뒀고 이 수익금을 청소년들을 위해 기부했다. 

지난 11일 진행된 기탁식에 참석한 백남순 어르신은 “김남주 어르신이 함께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시화집이 출간되고 그 인세로 공부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기부까지 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오지 마을 어르신 채록시집도 발간

전북 완주군은 지난 11월 마을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채록한 시집 ‘동상이몽: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를 발간했다. ‘국내 8대 오지’라 불릴 만큼 산세가 험하고 삶이 녹록하지 않은 전북 완주군 동상면 어르신들의 고된 삶과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시들이 담겨 있다. 270쪽에 달하는 시집은 ‘호랭이 물어가네’와 ‘다시 호미를 들다’ 등 6부로 나눠 총 150여 편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이중 인상적인 시는 올해 101세가 된 백성례 어르신의 ‘영감 땡감’이다. “영감 산자락에 묻은 지 수년 지나/ 백 살에 초승달 허리 이마 주름 뒤덮는데/ 왜 어찌 날 안 데려가요이, 제발 후딱 데려가소, 영감”이라는 내용을 담아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또한 ‘경로당에서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있다’로 시작하는 ‘경로당 수다1’을 포함한 경로당 시리즈 10편도 웃음과 함께 울림을 선사한다.

또 늦게 배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 도전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지난 11월 22일 막을 내린 ‘제3회 예천국제스마트폰영화제’는 새롭게 시니어부를 신설해 주목받았다. 15편의 작품이 본선에 진출했고 최영규 감독의 ‘물맑은 예천을 아시나요’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노년의 두 남녀가 예천군 명소를 여행하며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익살스럽게 그린 작품이다. 어르신이 스마트폰으로 찍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 완성도를 보여주며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세월따라 흘러온 길’(소장춘 감독), ‘아름다운 우리 동네 산책길’(조상아 감독), ‘엄마가 밥 사줄게’(이향숙 감독) 등도 입상의 영광을 누렸다.

함께 이야기 쓰고 그림 그려 동화책 발간

집단 창작으로 동화책을 발간한 어르신들도 있다. 전북 완주군 성인 문해과정인 ‘진달래학교’에 다니는 어르신들은 최근 동화책 ‘칠십고개’와 그림책 ‘살아온 새월 중 가장 행복하지’를 출판했다. 

‘칠십고개’는 지역 동화작가와 함께 진달래학교 삼례지역 심화반 어르신 5명이 전래동화를 각색하고 삽화를 그려 완성했다. 책은 구렁이의 원한, 호랑이와 여우의 금강산 주인 다툼, 천 냥 내기 수수께끼, 끝없는 이야기, 용왕의 딸과 소금 장수 등 다섯 가지로,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실어 정감을 살렸다. 또 그림책 ‘살아온 새월 중 가장 행복하지’는 이 학교 삼례·비봉·고산지역 34명의 할머니가 참여했다. 제목 중 ‘새월’은 ‘세월’의 잘못된 표기지만, 할머니들이 직접 쓴 것이어서 고치지 않고 그대로 뒀다고 한다.

전소순 어르신은 “동화를 쓰는 몇 달간 즐겁고 행복했다”면서 “한글을 몰라 자식들에게 늘 미안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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