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문해력 부족에 빠진 대한민국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문해력 부족에 빠진 대한민국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12.17 13:53
  • 호수 7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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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KTX 열차의 할인제도입니다. 두 중학생 자녀를 둔 부부가 ‘서울-부산’ 구간의 왕복 승차권을 구입할 때, 얼마를 내야 할까요?”

지난 3월 EBS는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6부작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해당 방송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즉,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방송 1부에서는 김구라, 황광희 등 출연자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그리고 출연자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헌데 문제가 조금 이상했다. 

문제에서 ‘두 중학생 자녀를 둔 부부가’는 중의적으로 해석이 된다. 4인 가족의 표를 산 것인지, 중학생 자녀 혹은 부부만의 표를 산 것인지 설명만으로는 명확히 알 수가 없다. “부부와 두 중학생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 ‘서울-부산’ 구간의 왕복 승차권을 구입할 때, 얼마를 내야 할까요?”라고 해야 4명의 표값을 묻는 정확한 질문이 된다. 하지만 해당 방송에서는 중의적 질문을 제시해놓고 4인 표를 구매하는 것으로 ‘단정’한 답을 정답이라 제시하는 실수를 범한다. 

한국인의 문해력 문제를 비판하는 방송은 도입 부분부터 엉망이어서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실제 내용은 유익했다. 가제(假題)를 ‘랍스터’(가재)로 이해하는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한자어니까 모를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일을 가리키는 ‘사흘’을 ‘사’로 시작한다는 이유로 ‘4일’로 알고 있다는 학생이 많다는 것은 특히 충격이었다. 예전만큼 한자 교육을 하지 않아 한자어를 모르는 건 이해됐지만 순우리말을 다르게 이해한다는 건 놀라웠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빠르게 대충대충 읽는 습관 때문에 성인들도 문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도 충격이었다.

해당 방송에 현직 교사라 밝힌 사람들이 남긴 댓글도 흥미로웠다. ‘이모’의 뜻을 식당 직원으로 알고 있는 조카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영어교사로 소개한 한 사람은 자신이 영어를 가르치는지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르겠다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현재 학원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목은 영어와 수학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성적 유지를 위해 그나마 국어학원에 다니지만 나머지는 시험 기간에 잠깐 다니거나, ‘한국인이 설마 국어를 모를까’ 하는 심정으로 보내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국영수’가 아닌 ‘영수국’이라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국어를 모르면 즉, 문해력이 떨어지면 영어도 수학도 풀 수 없음에도 말이다.

물론 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다. 독서량 부족도 문해력을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다. 다가오는 임인년 새해에는 다시 한 주에 한 권의 책이라도 읽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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