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5년마다 반복되는 ‘부실사업’ 바꿀 수 없을까”
[백세시대 / 세상읽기] “5년마다 반복되는 ‘부실사업’ 바꿀 수 없을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12.31 11:23
  • 호수 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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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비용에 대비해 형편없는 실적을 내는 국가사업이 있다. 대통령 선거이다. 5년마다 수천억원의 선거비용을 쏟아 붓는 등 요란한 과정을 거쳐 뽑아보지만 매번 결과는 ‘낙제점수’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헛발질’로 우리나라 정치는 후퇴하고 경제는 고비를 맞곤 했으며 본인들은 감옥에 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사업은 다른 방안을 검토하거나 접을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더욱이 투자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의 혈세’인데도 말이다. 

올해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는 513억원의 선거비용을 사용한다. 이는 전체 인구수에 950원을 곱해서 나온 금액에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을 감안해 산정한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가정이 소비하기 위해 구입하는 재화와 용역의 평균 가격을 측정한 지수이다. 이 지수의 변동률로 인플레이션을 측정한다. 

그런데 선거비용보전이라고 해서 후보가 당선되거나 사망, 유효투표 총수의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에 들인 비용 전액을 돌려받는다. 10~15% 미만 득표하면 ‘반타작’이다. 즉, 자기 돈을 한푼도 들이지 않고 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환상적인 혜택을 누리는 사업이 어디 있나. 수백억대의 사업을 하다 파산했지만 작은 부분에서 효과를 봤다고 사업비 전액을 보상해주는 ‘천상(天上)의 오징어게임’이다.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가 맞붙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14개 당과 무소속(김민찬)은 무려 1387억7000여만원을 선관위로부터 보전 받았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이처럼 천문학적 숫자의 선거비용 보전으로 선거 때마다 특수를 누렸다. 정당들은 선관위로부터 분기별로 정당보조금을 받는데 여기에 선거보조금과 선거보전비용을 받는 식의 중복 혜택 덕분이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민주당 중앙당의 총 재산액은 2016년 말 82억4822만원에서 선거비용보전금 지급 이후인 7월 당시 163억 1778만원으로 늘었다. 대선을 전후한 6개월 사이 80억6000여만원이 늘면서 재산 총액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한국당 중앙당 재산은 539억원에서 587억원으로 48억원이 늘었다. 대선을 치르면서 정당의 곳간이 두둑해진 셈이다.

정당뿐만이 아니다. 후보들의 지갑도 두둑해진다. 이정희 통합진보당(정의당 전신) 후보는 선거 틈을 타 수십억원을 챙겨 ‘먹튀’ 논란을 불렀다.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박빙 접전을 벌이자 이 후보는 ‘진보·민주 개혁 세력이 힘을 모아 정권교체를 실현하라는 국민의 열망’운운하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해 27억원의 선거보조금을 챙겼다.  

선거비용이란 ​선거운동을 위하여 소요되는 금전·물품 등 재산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가 부담하는 비용을 말한다. 재력이 없어 선거에 입후보하지 못하는 유능한 사람에게도 입후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이지만 이 제도가 정당의 재산을 불리고 개인 축재의 기회로 남용되는 일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만이 아니다. 국회의원, 지자체장 선거에서도 국민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특히 당선 이후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이들을 대신해 치르는 선거 비용이 만만치 않다. 2014년 6·4 지방선거로 뽑힌 민선 6기 단체장(광역·기초·교육감)과 지방의원(광역·기초) 중 130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이들에 대한 재선거 비용으로 300억원의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낭비된 것이다.

국민은 이번에 또 다시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비생산적이며, 가장 비가역적인 국가사업(대통령 선거)이 수주일간 전국을 패닉 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봐야 한다. 고성을 지르는 1톤 트럭의 행렬, 지하철역의 광대 춤들, 골목길을 도배한 선거벽보…5년마다 치르는 이 ‘부실사업’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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