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뺨에 수염이 다시 자랄 때
막장이라 여긴 절망의 끝
보란 듯 손 내밀어
생의 끈 다시 잡는다
아직 어린 길들이 희망으로 수북하다
한겨울 싹둑싹둑 잘라버린 나무 끝에 어린 가지들이 흰 눈을 뒤집어쓴 채 하늘을 향해 꿋꿋이 견디고 있다. 나무는 이리저리 비틀리면서도 필사적이리만치 새 가지를 키워냈는데 그건 마치 막장 앞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광부(鑛夫)를 보는 것만 같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수십 미터 땅속으로 내려가 곡괭이질을 하면서 이 노동이 아니라면 나와 내 가족의 삶이 없어지는 것만 같아 죽을 힘을 다해 땀을 흘려야 했던 남편과 아버지들의 숭고한 시간들이 이 나무가 견뎌온 시간과 같지 않았을까.
한겨울의 나목이 꽃눈을 달고 여리디 여린 손을 뻗어나가고 있다. 이 나무가 견뎌온 모든 날들이 다 새날이었듯이 다시 또 내일의 새날을 열어야 하는 저 수많은 손들이 새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무성해지는 그날까지 다시 파이팅이다. 새날을 위하여!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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