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어느 공중파 방송사의 자충수
[백세시대 / 세상읽기] 어느 공중파 방송사의 자충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1.24 10:24
  • 호수 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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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 받던 사람이 어느 순간 ‘3류 인생’을 살고 있어 놀라는 경우가 있다. 고학력에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 실직했던가, 또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경제적으로 쪼들린 끝에 인간관계마저 망가지고 끝에는 일상의 삶 자체가 파괴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사람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잘 나가던 기업, 병원, 학교가 어느 순간 훅 가버린다. 

MBC는 한때 여의도의 보라색 청사와 함께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1980~90년대만 해도 민간방송 MBC는 국영방송 KBS에 비해 모든 면에서 앞선 모습을 보였다. 타 방송국보다 드라마, 뉴스도 더 재밌고 생생하고 여성 탤런트들도 더 세련됐고 전속방송작가들의 기량도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그랬던 MBC가 SBS의 등장으로 명성이 퇴색해지기 시작했다. 뉴스보도의 생명이랄 수 있는 속보와 정확성에서 타 방송사에 뒤처지거나 유사한 구성의 예능프로그램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놓쳤다.

그러자 MBC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타 방송사에 빼앗긴 국민적 관심과 시선을 도로 끌어오기 위해 자충수를 두었다. 

대표적인 예가 채널A 기자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겉으로는 검찰개혁이란 명분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걸림돌로 여겼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음해하려한 자작극에 가까운 사건이다. MBC는 2020년 3월 당시, 채널A 기자가 윤석열 후보와 가까운 한동훈 검사와 짜고 금융사기로 기소된 사람에게 “유시민씨 비위를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정반대의 사실이 드러났다.

사기 전과자인 제보자가 특종 정보가 있는 듯 채널A 기자를 속여서 유인하고 MBC가 몰래카메라로 이를 촬영했다. 조사 결과 한동훈 검사는 유시민씨에게 “관심없다”고 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MBC와 이 정권 관련 인사들이 작전을 짜고 공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MBC는 2002년 김대업 병풍사건에서도 김씨를 ‘의인’으로 포장해 국민의 판단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사건은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군 부사관 출신인 김씨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아들의 군 면제 특혜 의혹을 제기한 정치공작의 하나이다. 이 의혹도 결국 무혐의로 끝났고, 해당 의혹을 폭로했던 김씨는 구속됐다. 

김씨는 당시 “자신이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했고 실형을 받았으며, 설훈 의원 등 관련자들도 크고 작은 처벌을 받은 바 있다.

MBC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아내 김건희씨가 친여 유튜브 채널 촬영 기사와 사적으로 통화한 내용을 지난 1월 16일에 방영했다. 

이 촬영기사는 작년 7월부터 김씨에게 접근해 6개월 간 총 7시간 45분 분량의 통화를 몰래 녹음해 MBC에 넘겼다. MBC는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 아래 특정 후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극히 사적인 대화를 적나라하게 방영함으로써 또 다시 국민감정을 부추겨 나라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었다.    

MBC의 이번 방송이 공중파 방송사의 품격과 공정성의 가치를 무너트리는 계기가 됐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친여 성향의 인사들까지도 이 대열에 끼어들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MBC가 공익적 가치가 높은 대장동 사태에 대해선 그런 열의를 보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MBC의 ‘선택적 공익’을 비판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유튜브에 압도당하는 공중파 방송의 몰락을 시사하는 상징적 사건인가? MBC가 공중파의 자존심을 버리고 작은 유튜브 채널의 하청 역할을 맡았다.” 

재밌는 점은 이번 방송이 MBC의 의도와는 다르게 윤 후보 측에 이롭게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방송 직후 윤 후보의 지지율이 올랐다. 친여 인사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뭐 대단한 게 있는 줄 알았더니 별로였다”며 “오히려 ‘줄리 의혹’ 등이 본인(김건희)의 입을 통해 깔끔하게 해명됐다”고 촌평했다. 

MBC는 앞으로 또 어떤 자충수를 둬 ‘3류 방송사’의 길을 재촉할지 모르겠다. 남부럽지 않는 인생을 살던 한 인간이, 수출산업훈장까지 받았던 한 기업이, 공중파의 선두주자가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는 심정이 착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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