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정의
노인의 정의
  • 관리자
  • 승인 2009.03.21 10:59
  • 호수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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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학교 교수
노인복지론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노인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물론 교과서에는 역(歷)연령에 의한 정의를 비롯해서 기능적, 심리적, 사회적 연령 등에 의한 정의가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 말고도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노인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학생들은 후자를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은 노인(老人)이다. ‘늙은이’란 뜻으로 긍정적인 표현은 아니다. 낡고 해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세가 70세가 넘어도 노인(老人)이란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어르신’ ‘시니어’ ‘실버’란 말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노년’(老年)이란 표현도 좋아 보인다.

우리 주변에는 성을 잘 내는 노인(怒人)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툭하면 큰소리 지르고, 짜증을 내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교양 없는 노인이다. ‘내가 나이를 먹었으니 이 정도의 말이나 행동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주위사람에게 무례하게 처신하는 노인들이다.

나이를 먹으면 이제 일선에서 좀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할 텐데 끝까지 일을 붙잡고 놓지 않는 노인(勞人)이 있다. 근심하며 일하는 노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많은 노인들이 용돈이라도 좀 벌어보려고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실 일은 젊었을 때 하는 것이고 나이 들어서는 좀 쉬면서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 평생에 해보고 싶었던 일 한 두 가지에 시간을 쏟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생과 자연, 우주를 생각해야 할 노년기에 일만 한다는 것은 사실 좀 안타까운 일이다. 지칠 정도로 일을 하는 노인(人)을 보면 정말 사는 게 고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년기를 어디에 매어서 사는 노인(奴人)이 있다. 돈·술·미움·분노로부터, 어떤 경우엔 자녀·남편·아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종노릇 하면서 사는 노인이다. 질병에 노예처럼 끌려가는 노인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인생 여정에서 어쩔 수 없이 졌던 짐들을 아직도 지고 가느라 힘들어 하면서 사는 노인이 많다.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꼭 필요치 않은 것들은 좀 훌훌 털어버리고, 그동안 나를 억눌렀던 의무, 업적, 명예, 체면, 관습들 중 버려도 되는 것은 좀 버리면서, 자유의 몸으로, 단순한 차림으로, 그러나 영적으로는 좀 민감하게 살 수는 없을까?

우리가 내일 죽어도 오늘까지 꼭 해야 할 일도 있을 수 있다. 연세가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엔가 뜻을 두고 죽는 날까지 그 일을 위해 꾸준히 힘쓰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이런 노인(努人)을 보면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사람은 나이가 많아도 여전히 꿈꾸는 사람이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더욱 새로워지는 이런 분들은 젊은이의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된다.

길을 걷는 노인(路人)도 있다. 불란서에는 무언가 못된 짓을 해서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청소년을 1:1로 만나 선도해주는 노인자원봉사단체가 있다. 거기에 속한 노인은 청소년과 함께 몇 주 동안 길을 걷는다. 배낭을 메고, 때로는 노숙도 하면서, 지나는 길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산하와 문화유적을 감상한다. 고생스럽고 위험한 일도 함께 겪으면서 노인과 청소년은 일심동체가 된다. 노인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삶의 자세는 자연스럽게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몇 주 동안 끈끈한 인간관계 속에서 인성과 자긍심이 함양된 청소년은 이제 자립의 의지를 갖고 보호관찰 대상으로부터 벗어난다. 난 언젠가 활동적이며 헌신적인 노인(路人)들과 함께 이런 자원봉사단체를 설립해 보고 싶다. 난 벌써부터 2011년에 완공된다는 국립공원 지리산을 한 바퀴 도는 300km 산행길을 걷는 꿈을 꾼다.

노인이 되어 인생을 회고할 때 후회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참을 걸, 즐길 걸, 베풀 걸…. 나이가 들었어도 아직 가능한 것은 은혜를 베푸는 노인(露人)이 되는 것이다. 자전에 ‘로’(露)는 이슬 로, 드러낼 로, 베풀 로의 뜻이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그리고 사회의 그늘진 곳을 위해, 시간으로, 물질로, 기도로 은혜를 베풀어 주는 일은 연장자의 가장 귀한 역할이다.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이다. 베푸는 자의 덕스러움에 의해 이 땅은 오늘도 살만한 곳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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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 2013-09-04 13:39:49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나는 어떠한 노인의 모습을 가져갈까?

사실 우리 나라의 현실은 노인의 설자라가 없다.
어디에 있든지 안어울리는 불안정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게 보는 내 시선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참을걸~ 우리나라 노인만큼 잘 참아온 분들이 어디 있을까?
즐걸걸~ 즐거는것 조차도 과소비로만 여기며 살았던 불쌍한 분들이다.
베풀걸~ 없는 살림에 베푸는것도 아름답다.

그렇다

김영숙 2009-09-01 17:38:59
"노년에는 사회의 그늘진 곳을 위해 시간으로, 물질로, 기도로 은혜를 베풀어 주는 일은 연장자의 가장귀한 역할이다.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이다. 베푸는 자는 덕스러움에 의해 이땅을 오늘도 살만한 곳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라라." 막지막 글에 평소에 멋지게 늙고 싶어 꿈을 꾸어 오던 내용과 공감되어 큰 감동을 받았다.
정년까지 일을 하고 나면 아무런 대가없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