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법의 미비점 보완, ‘산재공화국’ 오명 떨쳐야
[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법의 미비점 보완, ‘산재공화국’ 오명 떨쳐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2.01.28 11:28
  • 호수 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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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도중 노동자가 숨지는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막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이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이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이날부터 발효된다. 최근 광주 화정아이파크 사고로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법 시행에 관심이 모이고 있지만, 세부 내용을 두고는 이견이 분분해 한동안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체, 일반 사무직 등 업종에 관계없이 상시 근로자가 5인 이상인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다만, 현장의 혼란을 줄이고자 상시 근로자가 50인 미만인 사업장이나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의 산업 현장은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오는 2024년 1월 27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법 적용 대상은 사업주, 대표이사처럼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사업장 전반의 안전·보건 관련 조직, 인력, 예산을 결정하는 경영책임자도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중대재해는 크게 중대산업재해(산업재해 사망이나 복수의 중상, 직업성 질병이 발생한 사안)와 중대시민재해(특정 원료나 제조물 등 설계·제조·설치·관리 결함으로 생긴 사고)로 나뉜다.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경찰이 수사권을 갖으며, 중대산업재해는 고용부가 관리·감독 권한을 갖게 된다. 이때 중대산업재해는 ▲사업장에서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화학 물질 등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 1년 내 3명 이상 발생 등을 말한다.

근로자 사망 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며 징벌적 손해배상도 적용받을 수 있다. 법인 또는 기관의 경우 5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사망 외 중대산재의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겐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법인 또는 기관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법 시행의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과 안전 전문인력 채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의 안전모 착용은 기본이고,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법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이미 건설업계에는 처벌에 대한 공포가 퍼지고 있다. 법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키기엔 비현실적인 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이 전문인력 부족과 안전보건시설 확충 비용 등을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법 적용을 받는 50인 이상 중소제조업 322개사를 대상으로 ‘법 준수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53.7%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부담은 크게 나타났다. 50~100인 기업의 경우 60.7%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준은 세계 최고인데 이를 완벽히 준수할 수 있다고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국회는 사업주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때는 면책하는 규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경제대국 위상에 걸맞지 않게 산재사고가 많은 편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재 사망자는 828명에 달한다. 하루 두세 명씩 산업재해로 희생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법의 취지는 공감이 간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기업과 공공기관의 수많은 현장에서 안전 확보 노력에 혼선을 빚어서는 안 될 일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인을 처벌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산업재해 예방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에 법률 조항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들 또한 처벌을 걱정하기보다는 중대재해 발생을 막기 위한 예산, 제도 확보, 작업장 문화 개선에 힘을 다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우리나라가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떨쳐버리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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