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65] 양화에서 눈을 밟다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65] 양화에서 눈을 밟다
  •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 승인 2022.01.28 11:31
  • 호수 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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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에서 눈을 밟다

강변 물새들의 자취는 사라지고

천상의 옥가루가 선장(仙掌)에 날린다

공중에 어지럽게 흩뿌리다 별안간 바람 따라 

날리더니

평지에 가득 쌓여 어느새 한 길 높이가 되었네

몇 말이나 되는 술이 집집마다 가득하고

온갖 데에는 눈꽃이 촌죽(村竹)을 누르고 있구나

옷 전당 잡히고 마신 술의 취흥이 온천지에 횡행하니

백년 인간사가 한 순간이로다

江邊鷗鷺絶影響 (강변구로절영향)

天上玉屑霏仙掌 (천상옥설비선장)

空中散亂乍隨風 (공중산란사수풍)

平地彌漫忽盈丈 (평지미만홀영장)

十千斗酒盈比屋 (십천두주영비옥)

滿目瓊花壓村竹 (만목경화압촌죽)

典衣醉興橫八荒 (전의취흥횡팔황)

百年人事一瞬息 (백년인사일순식)

- 성임(成任, 1421~1484), 『新增東國輿地勝覽』   3권, 「漢城府 十詠 楊花踏雪」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의 「한성부」에는 서울의 열 곳 승경을 읊은 ‘십영(十詠)’이 기록되어 있다. (중략)

그중 ‘양화답설’을 읊은 성임(成任)의 작품을 소개해 본다. 성임은 조선전기 문신으로 서예에 특히 뛰어났으며 아우인 성간(成侃), 성현(成俔)과 함께 문명으로 이름이 높았다. 양화는 지금 마포구 합정동 인근 양화대교가 지나는 일대로 예부터 경치가 좋아 망원정을 비롯해 여러 정자가 들어섰던 곳이다. 평소도 절경이라 이름난 곳인데, 눈 오는 풍경이 얼마나 대단하였기에 ‘십영’에 꼽혔던 것일까? 지금은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아 시를 통해 상상해 볼 수밖에 없다.

위 시 2구에 보이는 ‘선장(仙掌)’은 ‘선인장(仙人掌)’이라고도 하는데, ‘신선의 손바닥’이란 뜻이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인 감로수를 받으려고 구리 기둥을 세우고 선인의 손바닥 모양의 쟁반을 설치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선장에 받은 이슬에 옥가루(玉屑)을 타서 마시면 불로장생을 한다고 전해진다. 옥가루가 선장에 날린다는 표현은 지척의 잠두봉이나 지금은 사라진 선유봉 위로 눈이 날리는 풍경을 형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풍경이 선계(仙界)의 모습인양 착각을 일으킬 만큼 대단히 신비로웠던 모양이다.

날리던 눈이 한 길이나 푹 쌓이고 푸른 댓잎도 하얀 눈꽃에 덮였으니, 이 풍경에 술 마시는 풍류가 제법 좋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 일대에는 겨울이 되면 강물이 얼어 물고기를 잡을 수 없던 어가(漁家)에서 술을 팔곤 했다. 성임도 근처에서 술을 사서 마셨다. 취기에 바라본 양화의 신비로운 설경은 그의 정신을 웅혼하게 하였고, 사방 천지까지 관통하는 정신으로 관조한 인간사는 백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속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 시절 양화의 설경은 초월의 신비로움과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장엄함이 그 매력이 아니었을까.(중략)

이 겨울이 끝나기 전, 눈이 또 온다면 그들이 남긴 시를 감상하며 양화를 거닐어 보는 것도 좋겠다.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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