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 국내 첫 베스트셀러 ‘자유부인’, 전란 후 사회상 반영
‘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 국내 첫 베스트셀러 ‘자유부인’, 전란 후 사회상 반영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2.21 13:40
  • 호수 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상설전시실 주제관을 개편해 광복 이후 우리나라 베스트셀러를 소개하는 ‘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 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한 관람객이 전시실에 비치된 베스트셀러들을 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상설전시실 주제관을 개편해 광복 이후 우리나라 베스트셀러를 소개하는 ‘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 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한 관람객이 전시실에 비치된 베스트셀러들을 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광복 이후 ‘별들의 고향’ ‘난쏘공’ 등 베스트셀러 231종 458권 한 자리에

최초 밀리언셀러 ‘인간시장’, 금서가 된 베스트셀러 등 시대 흐름 소개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아직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1954년. 서울신문은 새해를 맞아 새 연재소설을 공개한다. 작품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대학교수 부인이 불륜을 저지른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란하다는 이유로 연재를 중단하라는 항의가 쏟아졌던 것.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한다.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전반부를 다룬 ‘상(上)편’이 출간됐는데 발행 당일 초판 3000부가 매진됐다. ‘하(下)편’까지 총 판매량도 광복 이후 처음으로 10만부를 넘겼고 1956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돼 큰 호평을 받았다. 국내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평가받는 정비석의 ‘자유부인’ 이야기다. 

‘자유부인’을 비롯 광복 이후 우리나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책들을 한데 모은 전시관이 마련돼 화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4년간의 개편 작업 끝에 1월 25일 상설전시실 주제관을 새롭게 선보이면서 첫 번째 전시로 ‘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을 공개했다. ‘자유부인’ 등 도서자료 231종 458권을 선보인다.

특정 시기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을 의미하는 ‘베스트셀러’는 당대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생각이나 정서를 담고 있다. 즉, 베스트셀러 현상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그리고 일상에 이르는 한 시대의 전체 모습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초점을 맞춰 광복 이후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현상을 5부에 걸쳐 소개한다.

먼저 1부 ‘최초의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자유부인과 인간시장’에서는 대중들이 왜 ‘자유부인’과 ‘인간시장’(1981)에 열광했는지 1950년대, 1980년대의 사회상과 연결해 살핀다. ‘자유부인’은 불륜 로맨스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근대적 가치와 서구적 생활 양식이 뒤섞여 충돌하던 1950년대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즉, 처음으로 100만권 이상 팔린 책인 ‘인간시장’은 주간한국에 연재되다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20권에 달하는 장편으로 1984년 밀리언셀러로 이름을 올렸고 누적 판매량은 560만부다. 1970~1980년대 태동하던 민주주의의 싹이 신군부의 군화에 짓밟히던 시절, 시대의 암울함에 갇힌 대중들에게 통쾌한 대리 만족을 선사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70년대 노동자 주인공 소설 인기

2부 ‘산업화·도시화의 그늘-경아·영자 그리고 난쟁이’에서는 1970년대 베스트셀러를 한데 모았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1973),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1974) 등 통속적인 소설과 황석영의 ‘객지’(1971),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등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순수문학 소설이 함께 인기를 끌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산업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고뇌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자의 전성시대’는 시골에서 상경해 식모살이, 버스 여차장을 하다가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결국 몸을 팔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영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극적으로 전개되지만 그 속에는 1970년대 차별당하던 여성들의 삶이 잘 녹아있다. 

반면 조세희의 ‘난쏘공’은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순수문학이지만 ‘영자의 전성시대’처럼 1970년대 산업화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의 참상을 우회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어지는 ‘비판과 저항의 독서문화-금지된 베스트셀러’에서는 군부 독재 치하에서 사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가 된 김지하의 ‘오적’(1970),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1974) 등을 소개한다. 

당시 군부를 비판한 출판인들의 구속이 이어졌고 판매금지·압수된 서적은 1300여종, 300만권에 달했다. 엄중한 단속에 대한 반동 작용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몰래 읽기’가 유행하던 것도 이 시절이다.

1980년대 후반 자기계발서 인기

군사정권이 저물어 가고 고도 성장기가 정점을 찍던 1980년대 후반부터는 베스트셀러에도 성공을 향한 욕망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4부 ‘성공을 향한 솔직한 욕망-어느 샐러리맨의 책장’에는 이러한 욕구가 반영된 인기를 얻은 책들을 소개한다.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처세술’(1988),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 정주영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992) 등이 큰 인기를 누렸다. 역사 인물의 자기계발 노력을 엿보려는 욕망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1990), 이재운의 ‘소설 토정비결’(1991),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1992)의 대히트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베스트셀러들도 소개한다. 1976년 이후 2000만부 이상 팔린 ‘운전면허학과시험문제’과 ‘대한민력’, 그리고 1960년대 발간돼 수험생들의 대학진학에 큰 역할을 했던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