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탈북 천재 ‘수학자’와 ‘수포자’의 세대를 넘는 우정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탈북 천재 ‘수학자’와 ‘수포자’의 세대를 넘는 우정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2.28 15:07
  • 호수 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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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신분을 숨긴 채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천재 수학자와 어려운 형편 속에도 꿋꿋하게 경쟁하는 수포자 학생이 수학으로 교감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번 작품은 신분을 숨긴 채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천재 수학자와 어려운 형편 속에도 꿋꿋하게 경쟁하는 수포자 학생이 수학으로 교감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신분 숨긴 경비원과 ‘사회적 배려 대상’ 고교생의 비밀과외 이야기

입시제 비판하며 경쟁 시달리는 현대인 위로… 최민식 3년만의 신작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전국 1% 수재만 모이는 동훈고등학교에는 낡아서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 하나 있다. 자물쇠로 꽁꽁 잠겨 들어갈 수 없는 이곳에서 어느 날부터 밤마다 은밀한 비밀과외가 이뤄졌다.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입학, 과외를 받을 형편이 못돼 친구들보다 수학 성적이 크게 뒤처져 전학 위기에 몰린 ‘한지우’(김동휘 분)를 구제하기 위한 수업이다. 놀라운 점은 지우의 과외선생은 잘나가는 ‘일타강사’가 아닌 새터민이자 이 학교 경비원인 ‘이학성’(최민식 분)이다. 두 사람의 비밀과외는 어떻게 시작됐고 그 끝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대중에게는 어렵기만한 수학을 소재로 극한의 경쟁에 내몰려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3월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국민배우 최민식이 2019년 ‘천문’ 이후 3년 만에 극장한 영화에 출연한 작품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작품은 전교생이 ‘스카이’(SKY)라 불리는 서울‧고려‧연세대에 쉽게 입학하는 수재들만 모이는 동훈고등학교에서 힘겹게 경쟁 중인 지우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지우는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영재 소리를 들었다. 그는 ‘사배자’ 전형으로 동훈고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상 과외를 받지 못했다. 동훈고 학생들은 선행학습을 통해 1학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교 3년 수학 교과과정을 모두 끝낼 정도였지만 혼자서 해야 하는 지우는 이를 쉽게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담임은 그에게 전학을 고민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던 중 지우는 친구들과의 사건에 휘말려 기숙사에서 한 달간 퇴출 당하는 징계를 맞는다. 그는 친구들이 소개해준 폐쇄된 건물에서 잠을 해결하려 하지만 때마침 순찰을 돌던 학성에게 들킨다. 학성은 기숙사에서 쫓겨난데다가 비에 홀딱 젖은 지우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껴 경비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해준다. 

지우는 스도쿠를 풀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학성 옆에서 숙제를 하다가 책을 떨어트리며 잠든다. 소리에 놀란 학성은 지우를 바라보고 이때 그의 옆에 있던 어려운 수학문제로 가득한 숙제를 발견, 전부 풀어버린다.

동훈고 학생들에게 ‘인민군’이라 놀림받는 학성은 김일성대학에서 강의하던 북한 최고의 수학자였다. 그러다 아들과 함께 남으로 넘어왔지만 안타까운 사고로 유일한 혈육을 잃고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수학에 대한 애정 만큼은 놓지 않았다. 

았다. 

다음날 숙제를 확인한 지우는 깜짝 놀란다. 자신이 푼 적도 없는 문제지에 빼곡히 풀이와 답이 적힌 데다가 단 한 개도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학성이 대신 풀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우는 즉각 그에게 달려가 수학을 알려달라 부탁한다. 거듭된 부탁에도 완고히 거절하던 학성은 우연히 지우의 사연을 알게 돼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고 결국 은밀한 과외를 수락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과외를 통해 지우는 지금까지 자신이 ‘수학’이 아닌 단순히 문제를 푸는 ‘기술’을 공부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문제를 푸는데 3시간씩 걸리는 수고를 하면서 수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즐거움을 얻기 시작한다. 학성 역시 지우를 통해 아들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채워나간다. 

하지만 학성과 지우의 단란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한다. 두 사람의 미래를 어두운 방향으로 이끌수도 있는 사건을 각각 맞이한 것이다. 학성과 지우는 결국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두 사람의 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번 작품은 노년기에 접어든 어른과 미성숙한 10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아픔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여인의 향기’(1993)와 ‘굿 윌 헌팅’(1997) 등을 연상케한다. 실제로 이 두 작품에서 성공한 주요 설정을 영리하게 차용해 같은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단순히 입시제도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특히 학성이 지우에게 ‘용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수학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낸 점도 인상적이다. 일상 곳곳에 적용된 수학을 쉽게 알려주고, 원주율(파이, π)의 숫자를 계이름으로 바꿔 음악으로 표현한 ‘파이송’도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인다. 최민식은 비밀을 품은 천재 수학자의 순수한 열정과 갈등을 힘 있게 소화했다. 식상할 수 있는 대사는 그의 눈빛과 음성을 통해 진정성 있는 위로로 바뀌어 벅찬 감동을 전한다.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신예 김동휘의 재기발랄함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배자로 입학해 늘 의기소침했다가 수학에 재미를 느낀 뒤 당당하게 변모하는 지우를 인상적으로 연기해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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